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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블랙박스를 요청합니다
세웅 지음 / 팩토리나인 / 2024년 10월
평점 :
- 책의 출처: 출판사 증정
이제 도로를 달리는 대부분의 차에는 블랙박스가 달려 있다.
이 기계의 보급으로 교통사고가 났을 때 책임소재를 밝혀내는 것이 매우 편리해졌다.
이런 세상이 되자 자연히 다음으로 우리 뇌에 블랙박스를 심는 것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해 보는 SF 작가들이 많아졌다.
이 작품 역시 인간의 뇌에 블랙박스가 심어진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를 상상해 본 작품이다.
이전에도 사람의 머릿속을 모두 기록하는 장치가 등장하는 작품들은 많았지만, 보통은 인간의 기억이 휘발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특히 블랙박스를 심은 주체가 나쁜 의도를 가지게 될 경우 얼마나 큰 힘을 가지게 될지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품들과는 차별성이 있었다.
작품의 배경은 약 30여 년 뒤의 한국으로 '더 블랙'이라는 기업이 뇌에 이식할 수 있는 블랙박스를 개발해 고독사나 의문사, 미해결 살인사건 등이 일어날 확률을 극단적으로 낮출 수 있게 된 사회이다.
모든 사람들의 뇌에 블랙박스가 심어져 있고, 사망하게 되면 블랙박스를 통해 사망 전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심장마비나 암 등의 질환으로 죽은 몇 명의 사람들에서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작품의 주인공은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이 된 '큰별'과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를 꿈꾸는 '은하'로, 전혀 접점이 없던 두 인물이 연이어 발생한 의문의 죽음을 추적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단 소재가 주는 참신함이 좋았다.
머릿속 블랙박스는 이미 여러 작품에서 다룬 소재지만 이 기계에 대한 통제권이 국가 권력이 아닌 사기업에 있다는 설정이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그 사기업이 언제까지나 공익으로 움직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 역시 작품에 사실감을 더해주었다.
다만 인물들은 다소 평범했다.
지금 시대에 경찰로 복무했던 할아버지를 동경해 경찰이 되었다거나, 전 남자친구의 사망으로 사건에 휘말려 들게 되는 프리랜서 작가, 주인공들을 도와주려고 혈안이 된 것만 같은 주변 인물들까지 여타 작품들에서 너무도 흔히 본 것 같은 인물들이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사건의 흑막이 굉장히 예상하기 쉬운 구조인지라 SF 소설이지만 살인 사건을 둘러싼 치열한 두뇌 게임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다소 김이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흑막은 예상하기 쉽지만 평범한 형사와 작가가 국가와 재력으로 무장한 막강한 권력을 상대로 어떻게 사건을 마무리하게 될지는 마지막까지도 예상하기 쉽지 않았다.
스포일러가 될까 언급은 하지 않겠으나 열린 결말로 끝난다거나 마무리가 아쉽다는 느낌은 들지 않으니 안심하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200페이지 중반으로 얇고 글씨도 많지 않아서 읽기에 부담스러울 분량은 아니며, 호흡도 빠른 편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재미나게 읽었고 넷플릭스 영화로 나오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