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아제 바라아제
한승원 지음 / 문이당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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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출판사 증정

저자 본인도 유명 작가고 이 작품 역시 동명의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이미 유명하지만, 저자의 딸인 한강 작가가 대한민국에 노벨 문학상을 안기게 되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다.

오랜만에 한국 출판계에 전례 없는 활력이 돌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듯 내가 태어날 무렵부터 사랑받아온 작품의 개정판이 나와 이번 기회에 읽어보게 되었다.

제목이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이라는 점에서 보듯이 이 작품은 불교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작품의 주요 인물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고자 했던 두 명의 여성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삶을 살던 '수남'은 어느 날 이웃집에 살던 병약한 하숙생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녀를 향한 절절한 마음을 표하던 그 남성은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게 되고, 수남은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불교로의 귀의를 위해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은선 스님 밑으로 들어가 '진성'이라는 법명을 부여받는다.

또 다른 인물인 '순녀'는 승려의 자식으로 태어나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가지고 성장했다.

그러다 새로 부임한 국어 선생님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지만, 선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모함을 받아 결국 둘은 이별하게 되고 어머니의 내연남에게 강간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상처를 가득 안은 순녀 역시 은선 스님의 밑으로 들어가 '청화'라는 법명을 부여받게 된다.

이 둘의 궤적은 승려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은사인 은선 스님이 대학에 가 더 큰 세상을 보고 올 것을 권유하지만 진성은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며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책과 경전을 통한 깨달음을 추구한다.

하지만 청화는 어느 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남자를 구해주게 되고 그가 자신과 함께 살 것을 끈질기게 권유하자 결국 파계승이 되어 절을 떠나게 된다.

세상의 학자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편견을 가지고,

자기야말로 정말로 진리에 통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로 주장한다.

'이렇게 아는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다.

이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직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그들은 이렇듯 다른 편견을 가지고 논쟁하면서

'저 사람은 어리석게 진리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자기야말로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지만,

과연 그들 중에 누구의 말이 진실한 것일까.

(pg 152)

재미있는 점은 저자가 진성의 책과 경전을 통한 깨달음의 추구보다 인간으로서의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타인과 더불어 사랑할 수 있었던 청화의 구도를 더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작품 속에서 청화는 법명을 잃고 다시 순녀로 살아가게 되지만, 작품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진성의 종교관이 오히려 더 세속적이며 가식적이고, 청화의 종교관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의미에서는 보다 종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깨달음의 진주는 그걸 얻기 위해서 억지로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감수하면서

정진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좁쌀 진주에 지나지 않아요. 적어도 그것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살아 있는 자들의 깨어 있는 넋 속에서

날마다 조금씩 자기 아픔의 삶과 함께 자라 가는 것입니다.

제가 은선 스님을 대단하게 여기는 것이 그 까닭입니다.

(pg 280)

또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극단적인 절제를 요구하는 것이 비단 불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물론 인간의 욕구에는 끝이 없기에 어느 정도의 절제를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볼 때 이득이 더 크다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본적인 욕구 자체를 거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자 역시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지나치게 절제할 경우 오히려 비인간성이 드러난다는 점, 욕구가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가면서도 충분히 타인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잘 강조하고 있었다.

허황된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나, 깨달음이라는 환상을 좇으며 살아가는 것이나,

결국 텅 비게 되기는 마찬가지여.

지옥도 극락도 결국은 니년의 그 텅 빈 우주 안에 있을 테니까.

(pg 323)

개인적으로 종교에 관심이 없기도 하고, 지금과는 사뭇 다른 당시의 고달픈 여성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들은지라 과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다 읽고 돌이켜보니 굉장한 기우였다.

저자의 문장이 읽는 재미를 주고 그러면서도 과연 사람답게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이상을 좇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도 던져준다.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 안에 멀게는 동학농민운동부터 가깝게는 광주와 제주도에서 희생된 역사 속 민중들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어 이야기의 깊이를 더한다.

오래된 작품이고 400페이지 정도로 두꺼워 다소 부담이 될 수 있겠으나, 저자의 탁월한 문장과 인간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는 작품이어서 읽기가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다.

동명의 영화는 너무 옛날에 나온 터라 찾아보진 못했는데 검색을 좀 해보니 원작의 스토리라인은 그대로 따라가는 모양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재미가 스토리라인에 있다기보단(오히려 전개나 결말은 예상하기 쉬운 편이다.) 저자의 감성적이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문체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원작을 모른 채 영화만 보면 특별한 감동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래부터는 사족이지만 저자가 한 인터뷰에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는 우수한 번역도 한몫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나도 잘 모르는 단어들도 꽤 나와서 중간중간 검색도 많이 해야 했던 데다 주변 풍광의 묘사가 굉장히 한국적인데 이 느낌을 과연 타 언어로 번역하기가 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쪼록 이 작품을 포함해 한국의 우수한 문학 작품들이 세계 여러 나라로 소개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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