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뜨는 숲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승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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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출판사 증정

나이가 드는 건지 철이 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힐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콘텐츠는 본능적으로 멀리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 그런 거부감이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대미지를 주는 사회 구조를 탓하지 않고 그저 개인이 받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던 생각이 어차피 받을 대미지, 잘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 정도의 생각으로 바뀐 모양이다.

여하간 그런 와중에 힐링 소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저자의 최신작이 나왔다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작품의 형식적인 특징이라면 마치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들이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관계로 중간중간 이어져가며 진행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첫 이야기의 주인공은 간호사로 재직하다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하고 새롭게 직장을 구하는 40대 여성의 이야기인데, 이 여성의 동생이 이어 등장하는 이야기들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또한 이 여성이 우연히 구입하게 된 액세서리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식이다.

소재의 특징이라면 '달'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은 서로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이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팟캐스트에서 매일 주제로 언급하는 것이 바로 달과 관련된 이야기다.

밤이면 늘 하늘 위에서 우리를 비춰주고 있지만 애써 고개를 들지 않으면 좀처럼 눈에 띄기 어려운 존재.

"당연하게 주어진 다정함과 애정은 웬만큼 조심하지 않으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고 말지. 투명해져 버리는 거야. 그건 고독보다도 훨씬 쓸쓸한 일일지도 몰라."

(pg 267)

달의 여러 모습 중에 보름달의 대척점인 삭이라는 것이 있는데,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존재해서 밤에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때를 말한다.

이 삭이라는 소재 역시 각 이야기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감동을 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로운 시간의 시작. 울림을 주는 멋진 말이다.

그저 끝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매월 '시작'이라는 마디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니.

새로운 일이라는 말에 살며시 마음이 동했다.

(pg 34)

작품 속에는 총 다섯 명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각각의 인물들은 굉장히 사소한 인연으로 묶여있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 택배 배송일을 하는데, 이 사람이 네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의 짐을 비에 젖지 않게 성심성의껏 배달해 주기도 하고,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 재취업한 곳에서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이 급하게 진료를 받아야 할 때 적절한 병원을 안내해 주기도 한다.

어찌 보면 굉장히 사소한 인연들이지만 이 사소한 인연들이 모여 곧 우리 사회를 인간답게 만들고는 한다.

"그치만 아무리 기분이 좋다고 해도 만난 적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위해서

왜 그렇게까지 해주시는 걸까요?" 히로키 씨는 고개를 흔들었다.

"좋고 싫고 그런 문제는 아니지. 그냥 누군가의 도움이 되고 싶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세상을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해.

내가 연극을 하는 이유도 그런 거고."

(pg 231)

무작정 일을 그만두고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린 여성, 개그맨의 꿈을 꾸며 택배 배달로 생계를 꾸려가는 청년,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 독립하고 싶은 여고생, 갑자기 딸이 임신 후 결혼을 선언해버려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게 된 중년의 아버지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들 속에 담긴 인연의 끈들이 상당한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이었다.

"고민이 있을 때면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하잖아.

내가 있다고 말하는 건 상대방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거든.

친구를 위하는 내 존재가 그 친구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게 아닐까 하고."

(pg 60)

모든 인물들의 이야기가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에 물론 현실은 문학 작품처럼 녹록지 않다며 눈을 치켜뜨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현실이 그럴수록 따뜻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주는 에너지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장르에는 생소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첫 경험이 꽤나 좋게 기억되어 이 작가의 작품이라면 다음에 또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상황도 우리는 좋고 나쁨을 곧바로 판단할 수 없을지 모른다.

사건은 언제나 그냥 일어나기 마련이므로.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스스로와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기를 바라고,

믿고, 행동할 뿐이다.

(pg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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