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유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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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영화 '해바라기'의 대사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텐데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이 대사가 생각났다.

어차피 '이렌'과 '알렉스'를 모두 읽은 독자들이 읽을 것이고 그 두 작품을 읽었다면 작가가 들려주는 꿈도 희망도 없는 서스펜스에 익숙할 것이니 스포일러 따윈 생각지 않고 감상을 적어볼 예정이다.

혹여 작품을 읽어볼 예정이라면 아래를 읽지 말고 바로 작품으로 들어갈 것을 권한다.

형사 카미유 베르호벤이 등장하는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첫 작품인 '이렌'에서 그는 임신한 아내와 그녀의 뱃속에 있던 아기를 잃는다.

그것도 '잔혹하다'라는 단어로는 충분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전시하듯 끔찍하게 살해당한 현장을 그의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된다.

보통 사람이라면 폐인의 길로 접어들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그는 '알렉스'에서 묘하게 꼬인 연쇄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면서 지난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이 두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왜소증으로 키가 145cm에 불과한, 시니컬하고 인간적이면서도 진실을 향한 집념을 놓치지 않는 '카미유 베르호벤'에게 푹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작품인 이 책에서 저자는 독자가 사랑하는 그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

비극의 숙명은 안도하는 사람을 덮치길 좋아한다.

안도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볼 때만큼 비극적 숙명이 엄습하기 좋은 순간도 없다.

그리고 그 순간, 그것은 마치 우연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개입한다.

(pg 15)

초반부터 두 작품에서 소소한 활약을 보여주던 동료인 아르망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 와중에 새로 만난 그의 연인 '안'이 불의의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기 직전에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게다가 범인이 입원한 병원까지 찾아와 끝내 살해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

벼랑 끝에 몰린 카미유는 편법까지 동원하며 사건을 뒤쫓지만, 그 과정에서 그를 믿고 지지하던 동료들의 신임도 잃게 된다.

그렇게까지 해서 밝혀낸 진실은 그에게 남아있는 의지마저 앗아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후반부로 가면서 몇 가지 반전이 등장하는데 물론 가장 충격적이었던 반전은 배후에 있던 인물의 정체일 것이다.

'이렌'에서 미치광이 연쇄살인범에게 정보를 팔아넘겨 카미유의 아내를 죽게 만드는데 일조한 전직 경찰 '말발'이 그 모든 일의 배후였고 '안' 역시 그가 그린 큰 그림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1권에서 단역으로 사라진 인물을 3권의 진정한 배후로 설정하면서도 개연성을 놓치지 않는 저자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모든 일이 끝난 후 그가 찾은 쉼터는 그가 키우는 고양이 '두두슈'가 반겨주는 도심의 집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가 남긴 아틀리에였다.

그의 어머니가 어린 그를 방치한 채 작품에만 몰두하던 그곳, '이렌'과 뱃속에 있던 그의 아기가 죽어간 바로 그곳, '안'이 마지막까지 그를 배신했던 그곳에서 그는 모든 일을 정리하고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에 잠긴다.

저자의 특성상 아름다운 결말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무리가 덜 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사건은 깔끔하게 마무리되고 적절한 정의도 구현된다. (물론 사건의 끔찍함에 비하면 더 극형에 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찰이 주인공인 작품에서 사법의 영역을 벗어난 처벌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추리소설 장르를 읽기 시작한 뒤로 하루 만에 한 권을 다 읽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그중에서도 가장 두꺼운 책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450페이지 정도로 3부작 중 가장 얇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꽤 두툼한 인상을 주는 책인데 어떻게 마무리될지 너무 궁금해서 잠도 줄여가며 읽은 것 같다.

이렇게 '형사 베르호벤' 3부작도 모두 읽었다.

최근에는 저자가 프랑스의 근현대사와 관련된 작품들을 주로 쓰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작품들도 재미나게 읽었지만 다시 범죄 소설 쪽으로도 집필의 방향을 돌려주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생기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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