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다 - 인간의 코딩 오류, 경이로운 문명을 만들다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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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분류된 책이라서 얼핏 제목만 들으면 AI 이야기인가 싶은데, 실제로는 생물학에 가까운 책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생물학으로 본 인류의 역사'라고 보면 되겠다.

사실 인류의 진화 과정에는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화의 과정이 특정 의도를 가지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랜 역사에 걸쳐 그 특질이 유용했을 시기가 이미 지났지만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시각을 보다 넓혀서 우리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우리의 역사를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보여준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리의 모든 능력과 제약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즉, 우리의 결함과 능력은 모두 현재의 우리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진행되었다.

(pg 14)

먼저 인류는 개체로서의 생존 기회를 늘리기 위해 이기적인 방법 대신 이타적인 방법을 택했다.

어리거나 나이 든 개체를 공동체가 함께 보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습성이 문화가 되면 자신 또한 아이를 낳았을 때나 나이가 들었을 때 공동체로부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 보다 큰 규모의 집단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공동체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타 집단과의 갈등을 가져오기도 하고, 기술력의 발달에 따라 지리적으로 먼 곳까지 침략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재미난 것은 인간 사이의 힘 차이보다는 미생물과 바이러스라는 전염병, 풍토병이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열강들이 앞다투어 식민지를 늘리려고 했던 제국주의 초기 단계에서는 식민지에 파견한 인구의 절반 이상이 풍토병으로 죽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죽어갈 사람들을 보낼 수 있었던 강대국만이 식민지의 수탈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도시에 군집하여 살게 된 인류는 전염병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도 놀라운 점은 팬데믹으로 인류의 상당수가 죽어나간 시기마저도 인류의 문명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 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전반적으로 심각한 사망률 위기는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노동력이 귀해지면 실질 임금이 상승해, 사회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pg 167)

그런가 하면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취약하게 만드는 물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불안정성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주목한 물질은 크게 알코올, 카페인, 니코틴, 아편 등 4종이다.

이 물질이 인류사에 미친 영향은 실로 거대한데, 생각해 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무역 활동의 초석도 이 물질들의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에서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물질에 대한 인류의 중독적인 소비가 곧 우리의 농업과 상업의 지도를 바꾸어놓은 셈이다.

책에서는 이처럼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가지는 신체적, 정신적 이점과 약점이 우리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어마어마한 양의 예시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후미의 참고문헌을 제외하면 400페이지 정도로 그리 얇지 않은 두께에 전달하는 정보의 양도 굉장한데 그러면서도 읽는 재미가 탁월하다는 장점도 있다.

원문도 깔끔하게 잘 쓰였을 것 같지만 번역의 퀄리티도 매우 훌륭한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자연과학으로 분류해야 할지, 역사로 분류해야 할지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두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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