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렌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내에 소개된 저자의 책을 꽤 읽은 편인데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도서관에 늘 비치되어 있었지만 왜인지는 모르게 손이 잘 가지 않았었는데(솔직히 워낙 두꺼운 데다 3부작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읽을거리가 떨어진 참에 집어 들게 되었다.

그리고 50페이지가 채 넘어가기도 전에 그가 추리소설로 작가를 시작했었다는 사실이 생각났고, 그의 명성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오르부아르'를 비롯한 그의 최근작들이 대체로 프랑스 역사에 기반한 인간미 넘치는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은 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미치광이 살인마가 등장하는 잔혹하기 그지없는 추리소설이다.

단순히 시체 처리의 편의성을 위해 조각내는 것이 아닌,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마치 자신의 잔혹함을 전시하듯 조각낸 시체들이 시작부터 미스터리를 안겨준다.

'잔혹하다'라는 수식어를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이유는 이 책의 범인이 주로 고전 추리소설 중 피해자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장면을 골라 그대로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 나간 사건을 일으킨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인 '카미유 베르호벤'이라는 인물이 작품을 이끈다.

왜소증이 있어 키가 145cm밖에 되지 않는 그는 작은 키라는 핸디캡을 명석한 판단과 예리한 직감으로 극복한 인물로 상사나 부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범인이 워낙에 꼼꼼한 정신병자여서 추적이 쉽지 않아 난항을 겪으며 범인이 저지른 사건이 이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점차 드러난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사실들과 마주해 있다.

그건 완강할 정도로 실재하는 사실들이니만큼 이런 생각밖에 할 수가 없다.

그 사실들 속에 극도로 괴이하고 범상치 않은 광기가 서려 있다면, 경찰은

사력을 다해 무조건 체포해야만 하는 어느 미치광이와 정면으로 맞닥뜨린 셈이다.

(pg 248)

유력한 용의자가 등장하지만 곧 혐의가 벗겨진다거나, 범인의 전말이 작품 후반까지도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 주인공의 측근이 위기에 빠지는 점 등 기존 추리소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전개가 이 작품에서도 비슷하게 이어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저자 특유의 인물과 상황 묘사가 작품에 몰입감을 상당히 높여준다.

인물들의 사소한 습관까지 설정해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것 같고,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등장인물들이 그 상황에 맞게 했을 법한 생각들이 부족함 없이 표현된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힘도 여전했다.

총 530여 페이지 정도 되는데 작품의 2부가 무려 471쪽부터 시작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즉 전체 분량의 90%가 1부라는 의미다.)

더욱 놀라운 점은 1부에서 2부로 넘어갈 때의 반전이다.

반전이 있다는 점을 알고 봐도 찾아내기 힘들 정도의 반전이니 기대하고 읽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제목이 다소 스포일러성이라는 점이 약간 아쉽다.

주인공의 아내 이름인데 작품 중반까지 신변에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조만간 뭔가가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을 안고 읽어가게 되고, 마침내 그 일이 일어나는 순간부터는 카미유의 초조함을 똑같이 느끼며 페이지를 넘기게 될 것이다.

번역도 조금 호불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여태까지 접했던 저자의 작품과는 번역가가 달라서 그런지, 아니면 이 책이 현대 추리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현지화가 잘 된 것 같은 번역이라 읽으면서 약간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배경도 프랑스고 인물들도 다 프랑스인인데 말투가 너무 한국인 같아서 느껴지는 어색함이라고 보면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읽는 재미를 더해줬다고 생각하는데, 외화풍의 진중한 어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싶다.

개인적으로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 궁금해져서 저녁에 게임하는 시간을 줄여가며 읽었을 정도로 재미나게 읽었다.

이어지는 '알렉스'와 '카미유'까지 총 3부작으로 '형사 베르호벤' 시리즈가 이어진다고 하니 바로 이어서 읽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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