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바닥 - 이케이도 준

끝없는 바닥 -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6월

'한자와 나오키'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했다.

이 작품이 저자의 데뷔작이라는데 무려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이라고 하니 떡잎부터 다르긴 달랐던 모양이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기도 해서 기대가 되었다.

작품의 화자는 은행에서 대출 관련 업무를 담당하며 출세나 정치와는 거리가 먼 '고독한 늑대' 스타일의 남자다.

어느 날 옆자리 동료가 "너, 나한테 빚진 거다?"라는 묘한 말을 남기고 외근을 나가는데 바로 그날 벌에 물렸다는 기묘한 이유로 죽고 만다.

사망한 동료의 업무를 대신 수행하던 그는 죽은 동료가 모종의 금융 스캔들을 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그는 사사건건 방해에 시달리다 나중에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되면서 점점 더 진실에 다가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베일이 벗겨지는 구조이며 사건의 전체 진상은 꽤나 후반에 가서야 밝혀진다.

하지만 중간중간 등장하는 방해공작과 유력해 보이던 용의자의 사망 등 계속해서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한다.

등장인물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를 굉장히 입체적으로 잘 만들어서 어느 하나 불필요해 보이는 인물이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

중후반부쯤 되면 대충 범인은 예상이 되지만 사건의 전모는 워낙 복잡해서 예측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일개 은행원이 감당하기에는 사건의 규모가 상당한데(사망자만 다섯에 이른다.) 작품의 전개가 탄탄해서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결말 역시 슈퍼맨처럼 주인공이 모든 비밀을 파헤친 뒤 범인도 때려잡는 흐름이 아니어서 좋았다.

기본적으로는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추리소설이지만 읽는 재미 외에도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출세나 성공 같은 것들을 추구할 때 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도 훌륭하게 담아내고 있다.

저자가 작가가 되기 전에 은행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은행 업무가 꽤나 자세하게 묘사되고 이 부분이 사건의 진상에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금융에 대한 이해가 높다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작가가 친절히 설명해 주기 때문에 금융지식이 없다고 해서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고 작가의 명성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제대로 경험한 것 같다.

국내에도 저작이 많이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다른 작품을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