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사피엔스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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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화된 작품들이 있어 유명한 작가지만 막상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 내가 좋아하는 SF 장르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읽어보게 되었다.

제목만으로도 뭔가 인간에 반하는 존재가 등장할 것임을 알 수 있다.

등장인물은 AI 개발자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쌓은 '케이시'와 그의 아내 '민주', 그리고 케이시가 사망한 뒤 민주의 새로운 남편이 된 '준모'까지 크게 셋이다.

AI의 거장이었던 케이시는 자신이 치료될 확률이 극히 낮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확률이 낮은 치료에 기대하기보다는 마지막 AI 연구에 전념하기로 결심한 그는 자신의 뇌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인간과 완벽하게 상호 연결이 가능한 AI를 만들고 이를 '앨런'이라 부르기로 한다.

앨런은 케이시가 병으로 나약해져 있을 때의 뇌를 기반으로 한 AI이기 때문에 그가 가진 원망과 질투,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우선적으로 학습한다.

스스로 과제를 설정해 학습하는 AI인지라 인간의 악의를 굉장히 폭넓게 학습한 앨런이 민주와 준모를 향한 악의를 드러낸다는 것이 작품의 줄거리다.

일단 케이시가 마지막으로 시도한 것이 일반적인 마인드 업로딩과는 다르다는 것이 특이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마인드 업로딩을 하되 자아를 가진 AI가 하나 더 딸려 있는 모양새인 것이다.

케이시는 그저 자신의 인지 능력 향상 정도를 기대했을지 모르겠으나, 자신만의 자아를 형성한 앨런은 당연히 그의 통제를 따르지 않게 된다.

이 설정에서 몇 가지 의문이 따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케이시와 앨런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케이시가 원본, 앨런이 복제본일 텐데 실제 역학관계에서 케이시는 앨런의 기생충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이미지가 아닌 실물이니까요.

복제하거나 삭제하거나 제현할 수 없는 유일한 진본이죠. 빛과 어둠,

그리고 약간의 우연이 빚어낸 찰나의 진실 말이에요."

내 말은 딱딱하고 서툴렀지만 어색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녀가 되물었다.

"우리 인생처럼요?"

(pg 95)

또한 육체가 없는 정신이 개별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지도 물음표다.

자의식이 있지만, 구체적인 형상이 없기 때문에 민주와 준모는 앨런의 존재를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존재가 여러 기기들을 조종하며 현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충분히 개별적인 존재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는 작품의 아이디어를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에서 알파고의 지시에 따라 바둑돌을 놓았던 구글의 한 연구진에서 얻었다고 한다.

실제로 작품 내에서 이 내용이 언급되기도 하고, 앨런에게 휘둘리는 준모를 통해 'AI의 지시를 받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어 냈다.

실제로 AI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을 대체할 것이다.

그에 따라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그대로 시중에 풀어놓기만 하는 인간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인간이다.

울고 웃고 화내고 슬퍼하고 절망하다가 다시 희망을 찾고 미워하다가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기 때문에 다시 미워하고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꾸고

그러다가 파멸하고 그러면서도 후회하지 않는 지구의 유일한 종.

(pg 280)

이렇게 엄청난 AI를 만들었는데 고작 한다는 짓이 치정 문제라는 점은 다소 불만스러웠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작가의 명성답게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이 있었다.

굉장히 찜찜하게 끝낼 수 있는 이야기를 그래도 납득이 갈 만하게 마무리한 점도 좋았다.

SF 소설이지만 아주 먼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그의 작품들처럼 영상화하기에도 좋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문서는 사망진단서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한때 그가 존재했다는 가장 분명하고 진실한 증거다.

심정지와 무호흡, 경직 상태의 무게와 형태는 삶의 정지 혹은 부재를 단호하게 선언한다.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며 한시적인 삶은 확정적이고 불변하며

영구적인 죽음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니 어찌 삶은 존재의 윤곽일 뿐이며 죽음이 그 실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pg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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