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 - 다중우주의 비밀을 양자역학으로 파헤치다
로라 머시니-호턴 지음, 박초월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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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 이해도 못 하면서 양자역학 좀 공부해 보겠다고 이런저런 교양서들을 읽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해는 힘들어도 외워지기는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양자역학으로 우주의 기원을 찾는 책이다.

외국 저서들의 경우 마케팅을 위해 국내 이름을 본문과 전혀 다르게 붙이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 책은 원제와 다르면서도 내용에 부합하는 제목을 잘 뽑아낸 것 같다.

원제는 'Before the big bang', 직역하면 '빅뱅 이전의 우주' 정도의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저자의 대답을 국문 제목이 잘 요약하고 있다.

저자는 양자역학의 최신 이론들을 바탕으로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고자 하는 물리학자다.

양자역학에도 여러 해석이 있는데, 저자는 그중에서도 초끈이론과 다세계 해석(다중우주론이라고도 한다)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자는 인류가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한 명쾌한 답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가 지금까지의 연구가 단 하나의 우주를 전제로 연구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저자는 우리의 우주가 유일한 우주라는 관념이 너무도 오랜 시간에 걸쳐 확고하게 다져진 것이어서 여기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론물리학자에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열 번 제안한 생각 중에서

아홉 번만 틀리는 것이다.

맞을 때마저도 자신이 옳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십 분의 일밖에 안 된다.

이론물리학자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관측으로 검증할 기회는 드물기 때문이다.

(pg 194)

게다가 '우리우주'라는 것이 결국은 빛을 쏘아 도달할 수 있는 거리, 즉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라는 개념이기 때문에 우리우주 외에 다른 우주가 있다는 사실은 실험적으로 증명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우리우주가 아닌 다른 우주가 있다고 치더라도 근본적으로 그 우주는 과학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고 한다. (옮긴이는 '우리나라'를 붙여 쓰듯 '우리우주'를 일부러 붙여서 썼다. 맞춤법에는 어긋나지만 옮긴이의 의도를 존중하여 이를 준용했다.)

하지만 저자가 수학적으로 증명한 바에 따르면 우리의 우주는 유일한 우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오히려 우리의 우주가 단일하다고 가정하면, 우리 우주와 같은 우주가 발생할 확률이 수학적으로 볼 때에는 말도 안 되게 낮은 확률(그냥 0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작은)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우리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점을 보여주었다.

첫째, 펜로즈의 추정과 달리 우리우주의 기원은 매우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시작은 특별하지도, 유일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둘째, 우주의 기원 이야기는 이제 단순히 가정으로만 남아 있지 않고

자연법칙을 토대로 계산을 통해 도출해낼 수 있었다.

(pg 225)

물론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다중 우주가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 속 다중 우주와 같은 모습은 아니다.

그저 우리의 우주가 생겨날 때를 이론적으로 추적하다 보면 우리 우주처럼 다른 우주도 얼마든지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다른 우주가 우리우주와 비슷한 모습일지 어떨지는 저자의 논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저자는 "우리우주가 유일한 우주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검증했을 뿐이다.

우주 파동함수의 갈래들은 다양한 에너지 경관 진공에 자리를 잡고

에너지를 받아서 개별 우주로 진화한다.

그런 다음 결어긋남 과정을 거쳐서 얽힘을 풀고 고유한 정체성을 획득한다.

마지막으로 인플레이션을 통해 고전우주로 성장한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다음과 같다.

양자 경관에서 탄생할 가능성이 높은 우주는

고에너지에서 시작하는 원시우주라는 것이다!

천체물리학적 관측과 인플레이션 우주론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우주처럼 말이다.

(pg 240-241)

이렇게 다중 우주를 주장하는 과학자가 저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 모형이 있고, 모형마다 일련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모델이 매력적인 이유는 관측을 통해 상당 부분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이 검증되는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론이 향후 유력한 우주 모델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고 여러 관측 과학자들도 이를 검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야 과학자들이 다 밝혀낸 후 이 책처럼 쉽게 풀어주면 이를 외우기에도 급급하겠지만 말이다.

굉장히 어려운 개념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수학을 배제하고 다양한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읽기에 아주 도전적인 책은 아니다.

300페이지 초반으로 분량도 그리 길지 않고 저자의 개인 성장 이야기도 많이 곁들여져 있어서 일반적인 과학 교양서에 비하면 읽는 재미가 있는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양자역학으로 밝혀낸 우주의 기원을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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