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1~3 세트 - 전3권
류츠신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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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놀라운 작품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지금까지 꽤 많은 SF 작품들을 읽었고 개중에는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도 많았는데 이 작품 역시 그 칭호로 불려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생기기 어려울 것 같다.

평범해 보이지만 무슨 뜻인지 언뜻 짐작하기 어려운 제목에 개인적인 반중 감정이 더해져 구매 버튼을 누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작품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다.

제목인 삼체는 말 그대로 세 개의 물체를 의미하는 물리학 개념이다.

질량이 비슷한 물체 두 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움직이고 있다고 할 때, 그 두 물체의 질량과 속도를 알고 있다면 미래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 물체가 세 개가 되면 그 세 물체는 카오스적으로 움직여서 미래의 움직임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수학적으로는 이미 일반해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밝혀졌다.)

이 작품은 태양을 세 개 가진 행성이 존재하고, 그 안에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는 우주를 가정하고 있다.

그 세계를 삼체 세계라 부르는데, 이 세계의 문명인(삼체인)들은 당장 내일의 날씨조차도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적응하며 기어코 항성 간 이동이 가능한 수준의 과학기술 발전을 이뤄낸다.

하지만 과학이 그 정도로 발달해도 삼체문제는 여전히 해결할 수 없었기에 삼체인들은 행성을 버리고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려 한다.

그 무렵 지구에서도 한참 외계 생명체를 찾겠다며 SETI 프로젝트 같은 것들을 가동하기 시작했고 중국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한다.

그중 한 시도가 삼체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태양이 하나뿐인 이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삼체인들은 지구로 원정을 결정한다.

삼체 세계와 지구는 4광년 떨어져 있었고, 삼체의 함대가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약 400년의 시간이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 지구인들은 삼체인들에 맞설 준비를 시작한다.

재미있는 점은 삼체 세계와의 만남이 인류와 삼체인의 배신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처음 신호를 받은 삼체인은 추가적인 메시지가 도착할 경우 삼체인들이 해당 행성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추가적인 회신을 하지 말라고 충고함으로써 동족을 배신한다. (물론 아래에 서술할 삼체인의 특징 때문에 곧바로 붙잡혀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메시지를 보낸 인류의 배신자는 문화대혁명 때 인류의 바닥을 이미 경험한 뒤여서 차라리 외계 문명에 의해 멸망하는 편이 좋다고 판단하여 기어코 추가적인 회신으로 그들을 태양계로 초대한다.

여기까지가 대략 1권 후반부 정도의 내용이고, 1권이 3권 중 가장 얇다.

아마도 인간과 악의 관계는 대양과 그 위에 떠 있는 빙산의 관계로,

둘은 동일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빙산이 눈에 잘 띄는 이유는 그저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고,

그것의 실체는 거대한 물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인간 스스로 도덕적 자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려면 인간 이외의 힘을 빌려야 한다.

(1권, pg 114)

줄거리를 다 요약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한 양이니, 삼체인과 인류의 전쟁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설정한 것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400년 동안 인류가 삼체인들과 유사한 수준으로 과학기술을 진보시킬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작가는 이를 위해 삼체인들이 양자(더 정확히는 양성자)에 AI 컴퓨터를 이식하여 지구로 보낸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는 작품에서 확인하도록 하고, 결론만 말하면 이 양성자 AI의 가장 큰 역할은 인류 활동의 전반적인 감시와 지구의 양자역학 수준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이 양성자 AI는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지구에서 그 누가 언제 양자로 실험을 하더라도 개입해 방해를 할 수 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기가 막힌 발상이다.)

따라서 작품 속에서는 400년이 지나도 양자역학 수준은 현재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

작가가 참 똑똑한 접근법을 택했다는 생각인데, 현시대의 양자역학을 이해하기도 버거운 마당에 400년 뒤의 세계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 속 인류는 고정된 양자역학 수준 안에서 발버둥을 쳐야 한다.


"삼체인들이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전할까요? 그들은 인류의 문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들이 우리를 벌레라고 칭하기 때문에요? 그건 달라요. 다른 민족이나 문명을 존중하는 최고의 방식이 뭔 줄 알아요?"

"그게 뭐죠?"

"바로 멸종시키는 거예요. 그건 문명에 대한 최고의 존중이에요."

(2권, pg 248)

공정한 게임(?)을 위해 작가가 인류에게만 핸디캡을 준 것은 아니다.

삼체인 역시 독특한 점이 있는데, 바로 언어와 사고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인류처럼 사고를 음성이나 글로 변환해야만 진행되는 의사소통이 아니라 정신 그 자체로 소통하기 때문에 떠오르는 사실 그대로 여과 없이 소통이 가능하여 거짓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문명인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이 익숙하다면 칼라를 잘라낼 수 없는 프로토스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이 점을 이용하여 '면벽 프로젝트'라는, 오로지 인류만이 가능한 기만전술의 극치를 활용하여 삼체인에게 저항하는 단계가 2권의 주요 내용이다.

유일하게 막을 수 없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은 서슬 퍼런 칼날처럼 단단한 것이든 무른 것이든

소리 없이 베어버리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 무엇도 시간의 발걸음을 흔들 수 없지만 시간은 그 무엇도 다 바꾸어 놓는다.

(2권, pg 426)

2권에서 꽤나 설득력 있으면서도 짜릿하게 결말이 나기 때문에 3권이 대체 무슨 내용으로 전개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의 저력은 3권에서 빛을 발한다.

말 그대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그의 우주적 상상력의 집합체를 3권에서 만나볼 수 있다.

5000년 동안 미친 듯이 달려온 문명이었다.

끊임없는 진보가 더 빠른 진보를 부추기고, 수많은 기적이 더 큰 기적을 만들어냈다.

인류가 신처럼 위대한 힘을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진정한 힘을 가진 건 시간이며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

세상을 창조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3권, pg 664)

사실 SF 작품들의 시발점은 모두 허황된 상상이다.

본 작품 역시 상상력의 스케일 면에서는 기존의 그 어느 작품들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하드 SF의 매력을 최대한 살려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꽤나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상상으로도 떠올리기 힘든 차원의 이동을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글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지적 존재의 문명은 결국 그들이 가진 생각의 크기만큼 발전한다.

(3권, pg 791)

넷플릭스에서 영상화가 이루어져서 본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도 소설을 너무 재밌게 봐서 영상이 어떻게 뽑혔는지 정말 궁금하다.

총 세 권이라 짧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페이지로는 약 2천 페이지 정도로, 300페이지 정도의 보통 책이라면 5-6권에 해당하는 분량이라 생각보다 짧지 않다.

하지만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잠을 줄여가며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고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주는, 근래 읽은 문학 작품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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