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62-1985 - 생명의 씨앗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프랭크 허버트 지음, 유혜인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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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서 읽었던 작품집에 이어 1985년까지 프랭크 허버트가 쓴 단편들을 모아둔 책이다.

이 책 역시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에 18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책 초반에 수록된 작품 중 상당 수가 현재 인간과는 조금 다른 사고를 하는 존재들을 그려내고 있다.

첫 작품인 '정신의 장'의 경우 인간의 폭력성을 극도로 경계해 아예 세뇌 수준으로 폭력성을 제거한 인류의 후손을 그려내고 있고, 이후의 '눈치 빠른 사보추어'는 자아를 여러 곳에 저장할 수 있는 외계 생명체와의 공생을 그려낸다.

인류가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지니게 하려면 지구를 두 동강 낼 수 있을법한 무기를 누구나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신박한(?!) 논리가 등장하는 '공청회'나 과거에 존재했던 인류의 생각을 그대로 읽어낼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하는 'GM 효과' 역시 다른 방식의 사고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들이 사용할 수 있는 원시 에너지의 양은 점점 늘어나고, 그 에너지를 사용할

권한을 가진 사람 수는 점점 줄어든다고 수많은 과학자들이 지적한 바 있습니다.

오래된 현상입니다. 점점 늘어나는 폭력적인 힘을 점점 더 적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요. 전 세계를 파괴할 힘을 개개인이 쥐게 되는 날도 머지않았단 말입니다."

"당신이 사는 나라의 정부를 믿을 생각은 못 한거요?"

"이 정부는 이미 이 장치가 필요로 하는 것과 정반대되는 정치 노선을 따르고 있습니다.

사실상 정부 내 모든 사람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어 그 노선을 돌이키지 않으려 합니다."

(pg 167)

수록작 중 '원시인'이라는 작품은 드디어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시간 여행이 자유자재로 가능한 시기를 설정한 것은 아니고, 완성자조차도 단 한 번, 그것도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주 초창기를 그리고 있는데, 여기에 약간의 로맨스를 섞어 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밖에도 외계 생명체를 만나지만 기억을 삭제당해 만난 줄 모르게 된다는 이야기인 '탈출의 행복'이나 행성간 이동이 가능해진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피아노 수송 작전' 등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대했던 작품은 역시나 '듄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어떤 내용일지 정말 궁금했는데 사실 듄으로 향하는 여행객들을 위한 팸플릿을 상상해 작성한 작품으로 듄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시시할만한 내용이다.

다만 영화로만 보던 인물들의 삽화를 몇 장 엿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큰 장점이다.

그중 무려 5천 년에 걸쳐 등장해야 하는 던킨 아이다호의 공식 초상화를 소개한다.

영화 속 인물들로는 오히려 거니 할렉과 비슷한 이미지라는 것이 재미있다. (제이슨 모모아가 초등학생이었어도 저것보단 강하게 생겼었을 것 같다.)

(pg 587)

지난 작품집에 듄 집필 이전에 집필한 작품들이어서 '듄'의 설정에 녹아들어 간 작품들이 많았다면 본 작품집은 대놓고 '듄'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을 제외하면 '듄'의 집필과 시기가 맞물려서 그런지 비슷한 문제의식이나 주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에 담긴 상상력이나 이야기 전개 방식은 여느 작품 못지않았다.

'듄'의 팬이라면 마지막 작품이 가장 궁금하겠지만 다른 작품들의 재미가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점만 언급하고 싶다.

소설 '듄'은 내 짧은 독서 경험 중에서 그래도 손꼽힐만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이 작가에 대한 애정도 상당한데 그만큼 큰 재미를 주는 단편집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초반 작품들이 담긴 1권 쪽이 더 재미있었지만 2권 역시 상상력의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이왕 지를 거라면 두 권 세트로 지를 것을 추천한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나온 책이지만 이 정도 분량에 이 정도 퀄리티라면 팬으로서 기분 좋게 지갑을 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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