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독서 블로거를 표방하는 자가 할 말은 아니지만 직장에도, 집 근처에도 도서관이 있고 서평 이벤트로 받는 책도 많아서 책을 읽는 양에 비하면 내 돈 주고 구입하는 책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내가 오랜만에 예약 구매까지 해서 받은 책이다.
SF 소설계에서는 테드 창과 더불어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그렉 이건의 작품으로 국내에는 두 번째 소개되는 작가의 단편집이다. (장편은 '쿼런틴' 1권만 출간되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성격상 어지간한 책은 한 번 읽으면 팔아버리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편인데 이전에 읽었던 저자의 '내가 행복한 이유'와 '쿼런틴'은 너무 좋아서 소장할 마음으로 보관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 역시 예약 소식을 듣자마자 사게 되었다.
저자가 하드 SF를 추구하기 때문에 사실 저자의 작품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특히 '플랑크 다이브'처럼 본격적인 과학 이야기가 이어지는 작품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은 저자 특유의 상상력을 따라갈 수만 있다면 나처럼 태생적인 문과여서 지식적인 측면이 다소 부족해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총 14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번 책에서는 특히 유전자 조작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돈만 있으면 원하는 특질들을 모아 슈퍼 아기를 만들 수 있는 이야기인 '유진'과 수정란 때부터 조작이 들어가 제한된 수명과 지능을 지닌 애완용 아기(?!)가 등장하는 '큐티', 탯줄까지 통제해 성소수자가 아예 태어나지 못하게 막으려는 세력이 등장하는 '고치' 등의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건조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이를 통해 유전자 조작이 인간 사회가 이룩한 무형의 가치들을 꽤나 희생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