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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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통해 일반 대중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는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신간이다.

저자의 주전공인 곤충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이 인간 사회에도 상당히 유용한 통찰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을 저자가 기존에 했던 여러 강의에서 추려낸 책이다.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역시나 그의 이전 책들에서도 줄기차게 강조했던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이 책에서도 지구에 6차 대멸종이 다가오고 있고, 기존에 있었던 다섯 차례의 대멸종과는 달리 이번 대멸종의 원인은 오로지 인간이라는 점을 언급한다.

그리고 인간 또한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를 강조한다.

적어도 지구에 태어난 생명은 반드시 죽습니다. 생명에게는 언제나 한계가 있어요.

생명의 한계성, 이게 생명의 가장 보편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 중략 -

우리는 얼마 있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한계성을 지닌 개체지만, 우리를 만들어낸 DNA라는 유전물질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한계성도 지니지만, 영속성을 지닙니다.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온 거죠. - 중략 -

우리가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나와 개미가,

나와 은행나무가 다 한 집안에서 왔다는 겁니다. - 중략 -

지금 우리 인간이 자행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환경 파괴, 생명 파괴 현상은

결국 가족을 죽이는 일입니다.

(pg 110-112)

호모 사피엔스라 하여 스스로 '현명한 동물'임을 주장하지만 저자가 본 인간은 지속 가능성을 애써 부정하고 있는 종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생명의 근본이 DNA라는 사실을 알게 된 유일한 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어쩌다보니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결과로 태어난 겁니다.

태초에 물속에 살던 물고기 중에 일부가 뭍으로 올라오면서 육지동물이 생겨났고,

그 육지동물 중 누구는 파충류가 되고, 누구는 조류가 되고, 누구는 포유류가 되고,

포유류 중에서 영장류로 진화한 친구들이 있고 그 영장류들이 가지를 치다가

그 가지의 어느 한 끝에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이 태어난 것이지,

태초부터 인간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이 모든 생물이 존재했던 것은 절대 아니거든요.

(pg 114-115)

물론 제목처럼 오로지 곤충 이야기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곤충을 연구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함이듯이 저자가 평소에 갖고 있던 사회적인 인식이나 철학도 잘 나타나있다.

특히 저자가 최근 서울대학교에서 진행했던 졸업식 축사가 실려 있는데, 이 글에서 언급한 양심과 공정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일부 계층이 보여주는 명분 없는 싸움을 떠올리게 해서 상당히 인상 깊게 읽었다.

공평은 양심을 만나야 비로소 공정이 됩니다.

양심이 공평을 공정으로 승화시켜줍니다.

저는 모름지기 서울대인이라면 누구나 치졸한 공평 수준이 아니라

고결한 공정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선배들은 입으로는 번드례하게 공정을 말하지만

너무나 자주, 그대로 실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에서는 종종 무감각한,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밀어붙이는 불공정한 공평이 아니라

속 깊고 따뜻한 공정이 우리 사회의 표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pg 103)

그가 다른 저작들을 통해 다년간 강조해온 '통섭'의 가치도 역시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다.

평균 수명이 더 길어진 만큼 경제 활동 나이도 점차 늘어날 것이다.

대학 4년 동안 배운 한 가지 전공으로 평생을 먹고 살기는 쉽지 않은 세상이 된다는 의미다.

저자는 인문계 학생이었다면 자연과학을, 이공계 학생이었다면 인문학을 공부해 볼 것을 권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이전 저작들에서도 강조했던 기획 독서를 해야 한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

저자가 했던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어서 평소 저자의 유튜브 영상을 자주 보던 사람이라면 읽으면서 그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물론 내용도 그가 평소에 주장하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영상이나 저작을 자주 접했던 사람이라면 내용상 새롭게 배울 점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저자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거나 그의 저작 중 하나를 읽고 싶은데 너무 많아서 뭐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 시작점으로서는 상당히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 사는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생태적 전환을 해야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현명한 인간이라는 자화자찬은 이제 집어던지고

호모 심비우스로서 다른 생명체들과 이 지구를 공유하겠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공생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기 때문입니다.

(pg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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