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브라이언 에븐슨 지음, 이유림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2월
평점 :
게임을 원작으로 한 소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로 유명한 호러 작가의 단편집이다.
호러 장르를 좋아하지 않아서 위 시리즈는 게임으로든 소설로든 접해본 적이 없었는데 단편집이라고 하면 심리적 거부감이 훨씬 덜할 것 같아서 읽어보게 되었다.
호러에 일가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중매체에서 콘텐츠 소비자에게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첫 번째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모종의 행위가 있었고 언젠가는 그 행위로 인한 응징을 당할 수 있다는 인과응보적 성격을 갖는 무서움이 있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전혀 모르는 대상으로부터 전혀 예상되지 않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무서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300페이지 정도로 두껍지 않은 분량에 무려 22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각 작품마다 소재는 모두 다르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무서움의 유형은 위에서 분류한 구분 중 후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요즘 호러의 트렌드가 미지의 존재가 주는 공포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한에 의한 공포라는 소재 자체가 보다 동양적인 느낌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소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포의 느낌이 비슷하다는 점은 이 책의 색깔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작품 중에는 SF와의 경계선이 모호할 정도로 세계관 자체가 낯선 작품들도 있고, 배경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그 안의 인물들은 전혀 접해보지 못한 무언가(인물이라고 하기에도 좀 뭐하고.. 크리처라고 해야 할까, 괴물이라고 해야 할까)인 경우도 많았다.
2페이지부터 20페이지까지 작품의 길이가 들쑥날쑥한데, 그래서인지 그저 새로운 크리처의 등장으로 끝나는 작품도 있고 꽤 완성된 서사를 가진 작품도 있어서 작품마다 기억에 남는 정도는 꽤 차이가 난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광기가 어디까지 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룸 톤'이라는 작품과 '실종'이라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전자는 영화를 향한 광기를, 후자는 연인을 향한 광기를 보여주는데 두 작품 모두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여서 몰입감을 더한다.
그 밖에도 SF 느낌이 물씬 풍기는 우주 배경에 손쓸 수도 없을 정도로 파괴적이지만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은밀한 크리처가 등장하는 '구멍'과 '마지막 캡슐'도 재미있게 읽었다.
수록된 작품 모두가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작품 별 호흡이 길지 않기 때문에 읽기에 지루함을 느낄 틈은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데드 스페이스 외에도 유명 작품들이 많은 작가인 것 같은데 국내에 소개된 것은 적은 모양이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상상력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서 이 책을 시작으로 저자의 주요 작품들도 속속 소개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