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게스 - 불확실성을 확신으로 바꾸는 맥락의 뇌과학
이인아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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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으로 표현하자면 '완벽한 추론'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목에 충실하게 국내의 뇌과학자가 쓴 두뇌의 추론 과정에 대한 책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 두뇌가 어떻게 주변의 자극을 인지하고 이를 통해 맥락적인 학습을 하는지를 쉽고 자세하게 소개해 주는 책이다.

우리의 뇌는 최소한의 정보를 가지고도 주변을 충분히 인지하고 상황을 예측할 수 있도록 감각 기관이 인지하는 정보를 통해 추론하는 능력을 발달시켜 왔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매일 같은 길을 통해 출근을 하지만 매일 출근길에 어떤 사람을 마주치는지, 길가에 나무는 몇 그루였는지, 심지어는 계절의 변화도 매일같이 인지하지는 못한다.

이처럼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보를 다 기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출근길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몇 시에 어디쯤을 지나 어느 경로로 가는지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감각 기관을 통해 인지하는 정보들을 종합해 나름의 추론 과정을 거쳐 맥락적인 학습을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저자는 우리의 뇌가 이런 맥락적 학습을 하도록 진화한 것이 우리가 이렇게 허약한 육체를 가지고도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한다.

우리 뇌는 이미 평생 동안 이루어진 많은 학습을 통해

바깥세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과 상황에 대한 '인지적 모델'을 가지고 있고,

이 모델을 동원하여 세상의 애매함을 극복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측하여 대비합니다.

(pg 68-69)

이러한 맥락은 시간의 흐름, 공간의 이동과 같이 물리적인 부분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같은 사회적인 부분에서도 형성된다.

그리고 당연히 모두가 경험하는 삶의 궤적이 다르고 그에 따라 접촉하는 자극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 맥락의 형성 역시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러한 맥락의 차이가 개인의 진정한 개성이라고 보고 있다.

처음 태어나자마자 심기는 내 주변의 나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심겼을 가능성이 있지만 점차 성장하면서

내 주변에 어떤 나무를 어떤 모양으로 심을지 자신이 결정하게 됩니다.

어떤 친구와 어울리고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여행 장소를 골라서 가는지 등

자신이 하는 모든 경험은 뇌에 의해 학습되고 기억됩니다.

이처럼 쌓여 가는 기억은 훗날 어떤 선택을 할 때

다시 의사결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데 필수적입니다.

(pg 224)

저자는 이렇게 개인별로 다른 경험을 통한 다른 맥락의 형성이 뇌인지의 다양성에 매우 중요한데, 지금의 현대인들은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뇌에 제공되는 자극 자체가 동일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진화적으로 봤을 때 뇌인지의 다양성을 잃는다는 것은 인류가 지구 최상위의 종으로 군림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경쟁력을 잃는 것과도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AI의 보급이 많은 사람들의 직장을 앗아갈 것이라는 전망에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러한 두려움에 대한 해법 역시 바로 인간이 가진 맥락적 지식 형성 능력을 개성 있게 쌓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어떤 분야를 파고들다 보면 그 분야와 상관없는 분야를 내 전공 분야의 시각으로 보게 되듯이 맥락적으로 지식을 형성하다 보면 다른 지식과 다르게 얽힌 사고가 가능해지고, 이러한 점들이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부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AI와의 경쟁 아닌 경쟁으로 인해 이제 인간의 뇌는 제한된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인지적 모델을 가지고 세상 속의 애매하고 새로운 자극이나 상황에 대해

나름 완벽한 추론을 하던 장점을 극대화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습니다.

이것은 인간 뇌의 진화를 위한 또 다른 환경의 압박이라고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pg 256)

읽기 전에는 막연히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260여 페이지로 그리 두껍지 않은데다 문장이 현학적이지 않고 내용도 아주 깊지는 않아서 술술 넘어가는 맛이 좋았다.

서술적으로도 저자와 같은 서울대 교수들이 시리즈로 발매하고 있는 '서가명강'처럼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함에 있어서 일반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친절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서가명강' 시리즈가 이미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바 있어서 출판사도 같은데 왜 같은 시리즈로 나오지 않았는지는 의문이지만, 여하간 검은색의 진중한 표지가 주는 압박감과는 전혀 다르게 매우 친절하고 쉬운 책이라는 것을 꼭 강조하고 싶다.

획일화된 정보 습득 방식을 비판하고 있는 책이지만 이 책을 알게 된 경위가 그 획일화된 정보 습득 방식의 대표주자인 유튜브였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은 단연코 공감하는 바이며 아직 젊은 직장인이자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꼭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라기보다도 인간의 뇌가 어떻게 맥락을 형성하며 기능하는지 자체도 매우 흥미롭기 때문에 최신 뇌과학이 발견한 우리의 뇌가 궁금하다면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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