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 원자에서 인간까지
김상욱 지음 / 바다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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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친절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물리학자의 최신작이다.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었었는데 서평 작성에 실패했던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인 '양자 공부'를 제외하면 대체로 물리학자가 바라본 세상 이야기라서 그렇게 무겁지 않게 느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접했는데 생각보다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일단 '과학 공부'나 '떨림과 울림'같은 이전의 에세이들과는 책의 기본 구상 자체가 다르다.

물리학자로서 "인류의 근원을 빅뱅부터 지금까지 한번 정리해 보겠다"라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인류가 발견한 과학적 사실들을 최대한 교양서 수준에 맞게 정리한 책이라고 보면 되겠다.

양자역학 전문가인 그의 인간 이야기는 당연히 원자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원자들이 지배한다.

지구상 생물은 포도당 분자를 산화시켜

이산화탄소와 물로 바꾸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이는 탄소, 산소, 수소 원자가 배열을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처럼 원자들이 배열을 바꾸는 사건이다.

이때 원자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pg 158)

물론 지금은 원자를 구성하는 쿼크, 힉스 보손 등의 기본 입자도 많은 부분이 밝혀져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도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으나 어찌 됐든 '이 세상은 원자로 되어 있다'라는 명제는 그럭저럭 참이라 할 수 있다고 하니, 이 책도 원자에서 출발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사실 기본 입자 부분은 용어도 생소하고 이해도 잘 안됐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 생긴 물은 수소나 산소와는 완전히 다른 것처럼, 원자들이 모이면 분자가 되고 분자가 되면 분자만의 특징이 나타난다.

그리고 분자가 커지면서부터는 물리가 아닌 화학의 영역으로, 분자들이 모여 세포를 이루면서부터는 생물의 영역으로 전환된다.

생명도 어찌 됐든 원자로 되어 있으니 물리 법칙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환원론적 논리로 독자들을 이끌어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물리로 밝혀낸 부분은 아직도 매우 제한적이며 원자에서 분자로, 분자에서 단세포로,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층위가 올라갈 때 창발적인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을 알아냈지만 이 원자들을 통에 넣어 흔든다고 언젠가는 생명체를, 그것도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생명도 물리 법칙에 따라 작동된다.

하지만 생명을 설명하려면 우리는 원자의 층위에서 한 단계 올라가야 한다.

생명을 원자의 집단이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생명을 단순히 원자의 집단으로 환원하기는 힘들다.

(pg 261)

게다가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생물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뿐이다.

이 우주에 우리와 같은 탄소 기반의 생명체만이 존재할 수 있는지도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어찌 됐든 지금까지 우리가 밝혀낸 생명의 실체는 엄청난 시간이 쌓아온 우연의 결과물이라는 것뿐이다.

만약 외계 생명체의 화학 체계가 지구의 생명과 유사하다면

생명의 보편 원리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편 생명에 대한 이론을 구축해야 한다.

지구 밖에 생명체가 없다는 것은 우주 전체를 샅샅이 확인할 때까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외계에 생명체가 없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그냥 엄청난 우연의 산물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pg 262)

하지만 우리가 우연의 산물이라고 해서 우리의 삶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필연적인 것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물체를 떨어뜨리면 땅으로 낙하한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

감동은커녕 여기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

사실 물리학은 필연을 다룬다. - 중략 -

다시 말하지만 필연에 의미는 없다. 그냥 그런 것이다.

의미는 우연, 그러니까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과학이 아닌 것에서 나온다.

(pg 310)

논리로 승부하는 과학자의 책답게 책 후미에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한 번 더 정리해 주고 있어서 읽은 내용을 다시 되새기기에 좋았다.

이 책을 한 문단으로 요약한다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싶은 문단도 저자가 직접 후미에 기술해 두었다.

세상은 기본 입자에서 원자, 분자, 생물, 지구, 태양, 우주로 이어지는

다양한 층위로 구성된다.

각 층위는 자기만의 창발된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하나의 층위를 그것을 구성하는 하위 층위의 특성으로 쉽게 환원할 수 없다.

각 층위의 개별 특성을 알고, 이웃한 층위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파악하고,

전체를 조망할 때에만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pg 396)

저자의 전공 영역이 아닌 부분의 설명이 꽤 많아서 단순 지식 전달 부분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감성 넘치는 문장들이 돋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아래와 같은 문장들은 '역시'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부분들이었다.

우리 몸의 원자는 고양이에서 왔을 수도, 태양에서 왔을 수도 있다.

우리가 죽으면 원자로 산산이 나뉘어져 나무가 될 수도 있고 산이 될 수도 있다.

'나'라는 원자들의 '집합'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겠지만,

나를 이루던 원자들은 다른 '집합'의 부분이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우주의 일부가 되어 영원불멸한다.

(pg 48)

더욱더 나쁜 것은 인간의 활동으로 지구의 평균 온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기후 변화는 생태계를 훨씬 극적으로 교란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생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것이다.

하지만 대멸종이 일어날 때, 최상위 포식자는 언제나 멸종했다.

참고로 지금 최상위 포식자는 인간이다.

(pg 304)

전반적으로 저자의 기존 에세이들에 비하면 다소 이론적이라 진도가 훅훅 나가는 느낌은 덜하지만 물리나 양자역학에 국한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난이도가 아주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원자 수준에서 출발해 단세포를 거쳐 척추동물을 지나 인류에 이르기까지를 책 한 권으로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과학을 일반인들이 조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책들을 많이 내는 저자인지라 다음에는 어떤 주제로 대중들을 찾아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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