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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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가 쓴 독특한 제목의 에세이다.

저자의 이름은 한 방송에서 처음 접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다소 우습긴 하지만 왕년에 문학소녀였을 것만 같은 비주얼의 여성이 조근조근 과학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런 저자의 성향이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체 천문학자가 별을 보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서 온 사람들을 위해 먼저 답부터 언급하자면, 요즘은 전문화된 장비와 관측을 전담하는 인력이 있어서 그들이 생성한 데이터를 천문학자들이 받아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찾는 분석 작업을 주로 한다고 한다.

이처럼 기본적으로는 천문학자가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쓴 에세이집이라 보면 되겠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pg 13)

누구나 그렇듯 저자 역시 여러 역할을 가진다.

과학자 중에서도 천문학자이며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학생들에게는 강의를 지도하는 교수이고 선배 교수들에게는 몇 안 되는 후배 연구원이다.

그저 과학 이야기뿐 아니라 이렇게 여러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소감들이 모두 담겨있다.

특히 두 아이를 키우면서 '연구'라는 시간이 한없이 필요한 직업을 가진 자의 괴로움이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아이와 일을 양립시키기 어려운 이 체제에 대한 아쉬움과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러니 연구실에 홀로 남아 연구에 집중하는 밤은 정말이지 근사하다.

누군가로부터 전화도 걸려오지 않고, 누군가 찾아오지도 않으며,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일을 잊어도 되는 밤. - 중략 -

어떤 사람의 직업은 정해진 '시간'을 성실히 채우는 일이고,

또다른 사람의 직업은 어떤 '분량'을 정해진 만큼 혹은 그에 넘치게 해내는 것이라면,

나의 직업은 어떤 주제에 골몰하는 일이다.

(pg 78)

그런가 하면 우리 사회가 과학과 과학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비판과 성찰도 담겨있다.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이뤄낸 과학자를 칭송하지만 정작 과학이 발달할 토대를 마련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 풍토라던가 이제 과학자는 기업에나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동네 학부모들의 말을 통해 과학자라는 정의가 보다 넓게 정의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구절들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연구들이 대부분 세금으로 이루어지며, 연구결과들이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고 있는데 이러한 일이 가능한 이유 역시 과학의 발전이 곧 인류의 발전이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흥미로웠다.

사실 일반인들의 눈으로는 대체 무슨 쓸모가 있어서 저런 연구에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예산이 투입될까 궁금하지만 이러한 활동들이 인류의 세계 인식을 확장해 왔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과학 논문에서는 항상 저자를 '우리'라고 칭한다.

물론 과학 논문은 대부분 여러 공동연구자가 함께 내용을 채워 넣기 때문에,

우리라고 쓰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학위논문이다.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의 저자는 당사자 한 명인데,

그래도 논물을 쓰는 저자를 자칭할 때 '우리'라고 하는 것이다. - 중략 -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pg 265)

과학 지식을 곁들인 저자의 짧은 인생 에세이 묶음이기 때문에 공통된 주제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기본적으로 따뜻한 사람이구나 싶은 것이 글을 통해 잘 느껴진다.

과학자라고 하면 냉철하고 차가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저자의 글에서는 아무 대답 없이 그저 광활하기만 한 저 우주조차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뭐라도 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고, 삶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pg 270)

과학자가 쓴 에세이는 김상욱 교수의 책을 읽어본 경험이 있는데 물리와 천문학으로 다루는 학문은 다르지만 글의 느낌은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과학이 인문학과 예술,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 분야와 결합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과 동떨어진 그 무언가가 아니라 일생에 걸쳐 가깝게 배우고 익힐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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