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
스기타 슌스케 지음, 명다인 옮김 / 또다른우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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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어느 방구석 인셀이 또 페미니즘 씹으려나 보다' 싶은 제목인데 의외로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지 않다길래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궁금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일단 저자의 문제의식이 '모든' 남성이 힘들다거나 '남성도 여성만큼 힘들다'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약자 남성'이라는 계층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이를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약자 남성'의 '약함'(취약성)은 여성, 성소수자,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안티'가 아니라 주변성과 비정규성을 의미한다. - 중략 -

정규직 고용, 표준적인 가족상, 정해진 궤도로 운행하는 인생, '남자다움',

지배적인 남성성 등의 '정규성=정답'에서 탈락하고 이탈한 다수자 남성 중 일부.

이들이 약자 남성이다.

(pg 72)

저자는 분명 남성이 여성에 비해 사회 진출에 유리한 것이 통념적으로나 데이터로 볼 때 사실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경쟁에서 뒤처진 남성들은 힘듦을 인정받기도 어렵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서도 소위 잘나가지 못하는 남성들은 자신의 노력 부족이나 환경 부족을 탓하는 것 이외의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소수자들에 비하면 형편이 낫다, 더 우대받고 있다는 우월과 비교의 눈으로

남성 문제를 논하지 않았으면 한다. 구조적인 비대칭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누가 누가 더 힘든지 비교하고 경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불행한 건 불행한 것이고 괴로운 건 괴로운 것이다.

이런 단순한 인식이 '약자 남성' 문제의 근간에 있다.

(pg 34)

게다가 이미 전통적인 '가부장적 남성상'은 이미 해체된 지 오래인데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남성상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가부장적이건 가정적이건 관계없이 아직 남성에게는 경제력이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 인식 때문에 충분한 경제력(물론 경제력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여야 충분한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을 갖추지 못한 남성들은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사회 역시 그런 남성들을 조롱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장애인도, 소수민족도, 성적소수자도, 심지어는 여성도 아니면서 경제력이 없다니'라는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성차별과 인종차별은 용인할 수 없으면서,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빈곤과 비참한 삶은

자기책임으로 치부하고 그들을 차별 대상이자 공포와 모멸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노동자계급을 '야생화된 하류계급'으로 보는 것이다.

(pg 69)

문제는 이러한 절망이 쌓여 가끔씩 큰 사회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일어난 여러 총기난사 사건이나 일본의 아베 총리 살해 사건 등을 예로 들고 있지만 국내에서도 변변치 못한 직업을 가진 남성들이 자신보다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

절대적인 기준에서의 '약함'이 있다.

사실 '남성'이라는 속성도 부차적이어서 철저히 개인적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남자'로 태어난 이상, 남성이라는 속성에서

해방돼 빠져나오는 일도 용인되지 않는다.

(pg 34)

당연히 저자가 이러한 폭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될 때까지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이들을 외면해왔다는 뜻이며 이에 대한 처방이 없을 경우 이러한 일들이 계속 발생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사회의 양극화 심화 역시 비단 우리 사회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더 심각해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언제까지고 이러한 일들이 '능력 없는 개인의 일탈'로 정의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격차와 사회적 배제의 시대에서

초격차 양극화와 무관용의 시대로 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탈감은 '인간'의 '존엄' 문제와 연결된다.

우리는 국민, 시민, 노동자이기 전에 응당 한 명의 '인간'이어야 하나,

이 '인간의 존엄'이 박탈당하고 있다.

(pg 42)

그리고 근본적으로 '남성'이라는 속성 자체가 약함의 개념을 포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같은 '약자 남성'들은 서로 연대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약자 남성'이라는 개념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소수자는 차별당하는 속성을 무기로 내세워 정체성 정치로 전환할 수도 있다.

부당하게 억압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처지가 더 낫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소수자 속성이 없는 '남성'들은 정치성을 띨 수 없다.

연대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개인이 충분히 성찰할 여유도 없다.

(pg 57)

그렇다면 우리는 '약자 남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먼저 '약자 남성'이 엄연히 존재하며 이들을 위한 새로운 가치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천상'과 '최하층'을 이어주는 근본적인 '사상'을 찾아내지 않는 한,

약자 남성과 인셀이 일으키는 반란과 저항은 현대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단순한 '폭발'과 '경련'에 지나지 않는다.

(pg 138)

또한 절망한 '약자 남성'들이 온라인을 기반으로 주도하고 있는 '정규직 대 비정규직', '남성 대 페미니스트 여성' 등의 갈등을 가짜 대립으로 보고 보다 본질적인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갈등이 오히려 문제의 진짜 원인을 가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잘못 설정된 적을 겨눌 힘을 아껴 오히려 진짜 원인인 이 세상에 화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적'을 오인해 진흙탕 싸움처럼 서로를 미워하지 말고

이 세상의 시스템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

인셀 남성들은 인생의 굴욕에서 복받쳐 오르는 '적'에 대한 증오를,

자신과 적을 분열시키고 대립을 강요하는 '세계(시스템)'를 향한 분노로 바꿔야 한다.

용기 내어 싸우기로 결단해야 한다.

증오하지 말고 분노하라. 이 사회에 분노하라.

(pg 146)

물론 모든 '약자 남성'이 사회운동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고 격려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마저도 쉽지 않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내는 투쟁이라도 이어가야 한다.

절망에 빠져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지기보다는 계속 살아내어 자신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사회에 계속 인지시켜 주어야 한다.

저자 역시 그저 계속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존엄하다고 역설한다.

한쪽에는 이 쓸모없는 인생을 끝까지 살아내고,

계속해서 '노동'하는 '그냥 인생'을 완수하겠다는 존엄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가짜 적에 대한 증오가 아닌,

쓸모없음을 강요하는 사회를 향한 분노가 있고,

사회 변혁으로 가는 실천이 있다.

(pg 217)

굉장히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책 자체는 그리 두껍지도 않고 문체도 쉬워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당연히 일본 저자라 일본의 사례가 많기는 하나, 사례들의 양상이 우리나라와 그다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공감도 잘 되는 편이었다.

다만 저자가 전문적인 학자는 아니기 때문에 논지가 약간 중구난방으로 전개된다는 느낌은 있다.

이 책이 학술서가 아닌 에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여하간 쉽게 입에 올리기도, 또 일관된 논리로 정리하기도 쉽지 않은 주제인데 이 부분에 관해 쭉 글을 써온 저자라 그런지 깊은 고민의 흔적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저자가 이 주제에 관해 여러 책을 써 온 것으로 보이는데 국내에 번역되어 출판된 것은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다른 저서에서도 어떤 논지를 펴는지 궁금한데 앞으로도 국내에 계속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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