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 - 인간다운 삶을 지탱하는 3가지 기준
김기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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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제목을 가진 담백한 철학 책이다.

21세기, 인공지능과 로봇이 우리 사회에 스며들고 있는 요즘 다시 '인간답다'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읽어보게 되었다.

(솔직히 최재천 교수 유튜브에 저자가 출연해 나눈 대화를 보고 읽고 싶어진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인간다움의 세 가지 조건으로 아래와 같은 개념들을 제시한다.

공감을 연료로 하고 이성을 엔진으로 해 자율적으로 공동체적인 규범을 구성해 공존하는 성품

(pg 60)

여기에서의 키워드는 이성과 공감, 그리고 자유(자율)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밖에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여타 다른 동물과 구분 짓게 하는 특징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저자의 연역적인 추리 끝에 반드시 포함해야 할 특징으로 도출된 결과는 이 세 가지였다.

저자는 이 세 가지의 개념들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성의 경우 고대부터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언급되어 왔지만 중세를 거치면서 종교의 위세에 가려져 그 중요성이 상당히 약화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등을 거치면서 다시금 이성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그 결과로 과학이 발전해 사회를 지금의 모습으로 바꾸는 데 기여하게 된다.

공감의 가치 역시 인간이 공동체를 형성함과 동시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지만 이 역시 감정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이성을 중시하고 감성을 멸시했던 철학이 우세했던 시절에는 그 중요성이 제대로 강조되지 못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개인'과 '자유'의 가치가 중시되고 내가 존중받아야 할 만큼 타인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공감의 가치는 제 자리를 찾게 된다.

내적인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되었다는 것은

단지 예술을 발전시켰다는 의미 이상이다.

욕망과 정서가 머무는 내부에 대해 자유롭게 쓰고, 묘사하고, 이야기하면서

자아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pg 145)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과거에서 점차 공동체가 개인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자유에 대한 개념도 많이 확산되었다.

저자는 '개인이 자신의 신념을 가질 수 있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소극적 자유'와 마르크스가 주장한 '삶에 대한 전반적인 자유를 포함하는 적극적 자유'를 구분한다.

보통 여기까지 설명하면 적극적 자유를 더 보장하는 것이 좋다는 논리로 흐르기 쉬운데, 놀라운 점은 저자가 적극적 자유의 추구가 역사적으로는 반드시 억압과 압제라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소극적 자유를 더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믿음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절대적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공고해지면 다른 사람에 대한 기치론적인 압제와 강요를 하게 된다.

그것이 마치 그 사람을 위한 것인 양 정당화하면서 말이다. - 중략 -

이런 부작용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은 소극적 자유를 엄격히 지키는 것이다.

(pg 244)

여하간 이러한 역사를 통해 확립된 인간다움의 조건들은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SNS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다양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과 동물은 결국 지능 정도의 차이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조적인 시각도 널리 퍼지고 있다.

이성의 경우 과학과 기술 개발에 필수적인 이론적 이성과 도구적 이성은 분명 강화되고 있지만 행동의 기준이 되는 가치 이성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비대면 소통의 증가는 공감의 가치를 상당 부분 약화시킨다.

여러 연구결과들이 최근의 청소년들에게서 공감 능력이 이전 세대에 비해 많이 약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범죄의 발생 양상도 더 심각해지고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발달은 인간의 고유한 기능이라 믿어왔던 추론과 판단마저도 외주화하는 경향을 만들어 낸다.

내가 무엇을 보고 싶을지는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이 결정하고 점심에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도 네이버 블로그의 추천 맛집이 알려주며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때에도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른다.

도구적 의존을 넘어 점차 목표 의존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율적 선택을 하는 것에 점점 더 게을러지고,

우리의 선택은 그들의 선택으로 대체된다. - 중략 -

인공지능에 선택을 의존하는 상황은 이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공지능이 도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성은 우리의 행동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행위자의 자율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 중략 -

그러나 인공지능이 도입되면서 선택의 이유를 고민하는 이성은 잠자고

교통 포털이 제공하는 경로를 별생각 없이 따른다.

선택을 위한 고민을 외부에 의존하다 보니 이성을 통해 상황을 성찰할 기회는 줄어든다.

스스로의 삶을 그려나가는 자율성도 그만큼 위축된다.

(pg 312-313)

저자는 이런 위협에 직면해 과연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논의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무슨 가치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갈 것인지, 무슨 가치는 불멸의 가치로서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할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다움에 대한 고대인들의 생각이 오늘 우리의 생각과 다르듯

인간다움에 대한 오늘의 생각도 역사 속에서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성철하지 않고 그저 변화하는 세태에 몸을 맡길 수는 없다.

우리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에 도달했다.

그런 만큼 현재 우리가 처한 도전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인식한 뒤,

보존할 것은 보존하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대화를 시작하자는 이야기다.

인간다움에 대한 도전에 눈을 감는 것은 결코 인간답지 않기 때문이다.

(pg 323)

당연히 '인간다움'을 정의하는 단어들이 모두 추상적인 개념들이기 때문에 마냥 쉽게만 느껴지는 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현학적인 표현이나 지나친 추상화,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마구 늘어놓지는 않는다.

오히려 굉장히 친절하게 서술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쉽게 쓰려고 애쓴 저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300페이지가 조금 넘을 정도로 두껍지도 않고 내용도 꽤 흥미로운 편이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 인간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지, 역사적으로 인간은 어떻게 정의되어 왔는지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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