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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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저자의 책을 몇 권째 읽었는지 세는 것도 잊어버린 작가.

개중에는 분명 읽고 서평도 남겼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가물가물한 작품도 있는 반면에 비교적 오래전에 읽었음에도 줄거리가 선명하게 기억나는 작품도 있다.

이 작품은 후자에 속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내 기억력을 요즘 그다지 신뢰하지 못하고 있어서 확신은 못하겠다.)

그의 작품답게 이 책에서도 누군가의 죽음이 있었다.

그것도 곧 공소시효가 종료되는 사건의 죽음이다.

그리고 그 죽음의 유력한 용의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 한 유부남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유부남이면서도 상대에게 끌리는 자신을 멈추지 못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배우자에게 거짓말을 하며 관계를 이어가다 결국 가정을 포기하려는 순간까지 오게 되지만 그 와중에 사건을 알게 되고 상대가 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점차 긴장을 더해간다.

경계선 너머에 눈알이 핑핑 돌 만큼 감미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영원히 그것을 넘지 않을 수 있을까.

경계선 위에 벽 따위는 없고 한 걸음만 가볍게 내디디면 된다는 것을 알아 버린 지금,

그것은 비현실적이고도 불가능한 일이다.

(pg 80-81)

사실 중반까지도 작품에 그리 몰입을 못했다.

개인적으로 불륜, 바람 이런 소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불륜이나 바람의 자극적인 측면은 좋은데 인물들이 거짓말을 이어가며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심리상태를 못 견뎌하는 것 같다.(같은 이유로 드라마도 잘 못본다.)

태생적으로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거니와 그런 미묘한 긴장 상태를 구태여 계속 유지하면서 또 다른 거짓을 계속 만들어가는 인물이 못 견디게 불편하다.(그 악명 높은 INTP라서 고작 그런 걸로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잘 안된다.)

그래서 저자의 작품 치고는 읽는데 시간이 꽤 걸린 느낌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 작품은 그렇게까지 오래 기억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결말부를 읽는 순간 이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오래된 작품이기는 하나 스포일러를 남기고 싶진 않아서 결말까지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정말 상상도 못한 결말이어서 기억에 상당히 오래 남을 것 같다.

저자의 책을 꽤 많이 읽은 편이지만 결말의 충격 강도는 읽은 작품 중에서 손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반적으로 조금 몰입이 어려웠던 중반부를 지나 인상적인 결말까지 불륜과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불편할 정도로 꽤나 현실감 있게 풀어내고 있다.

뒤에 사족이 살짝 붙었다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독자들이 추가적인 의문을 느낄 여지가 없게끔 깔끔하게 잘 끝났다고 생각한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 과정에서의 짜릿함을 대리 체험할 수 있게 해두었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역시나 그렇게 살지 말라는 저자의 강렬한 메시지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읽을 때마다 평타 이상의 재미를 주는 작가이면서도 아직도 읽을 작품이 많다는 것이 이 작가의 최대 장점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몇 권이나 더 읽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리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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