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재수사 1~2 - 전2권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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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이라는 작품으로 상당한 충격을 안겨줬던 기억이 있는 장강명 작가의 2권짜리 범죄 소설이다.

제목처럼 22년 전에 발생했지만 미결로 남은 한 여대생 살인사건의 진상을 쫓는 이야기다.

서술의 특징이라면 형사의 수사 과정과 범인의 독백이 번갈아 나온다는 것이다.

독자가 사건의 진상에 조금씩 다가갈수록 범인의 정신세계에도 더 가까이 다가가는 셈이다.

그와 동시에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범인이 22년간 편안하게 잘 살아왔다는 사실 또한 알고 출발한다.

내가 등산 갔다가 굴러떨어져서 한쪽 눈이 먼다,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된다,

그러면 아마 한 1년 있으면 그냥저냥 적응해서 한 눈이나 한 다리 없이 잘 살걸요?

그런데 누가 내 다리를 잘랐다, 내 눈을 찔러서 멀게 했다,

그리고 그놈이 계속 떵떵거리면서 잘 살면? 그러면 나는 절대 잘 살지 못해요. - 중략 -

인간은 손해는 잊을 수 있지만 악의는 잊지 못해요. 훌훌 털어버릴 수가 없다고요.

(2권, pg 187)

2권짜리지만 1권이 끝날 때까지도 유력한 용의자조차 특정하지 못한 채 사건을 맴돈다.

1권에서는 사실 범인이 누구인가 보다는 피해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피해자가 왜 살해당했을까, 피해자가 평소에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언행을 보였었는가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2권부터 매우 유력한 용의자가 등장하면서 사건 해결에 급물살을 타게 된다.

'반전'이라는 단어조차도 스포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여하간 예측하기 어려운 결말이긴 했다.

그러면서도 끝난 뒤 찜찜한 맛을 남기는 부분은 전혀 없어서 좋았다.

내용에서의 특징은 저자가 의도한 바대로 '현실적인' 경찰의 모습이 잘 그려졌다는 것이다.

사실 CSI처럼 말도 안 되는 과학 기술도, 마동석의 무지막지한 주먹도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할당된 업무를 처리해 낼 뿐인 사람도, 출세욕이 넘치는 사람도, 진짜 나쁜 사람들 찾아서 벌주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분명 사람이기에 다양한 감정에 휘둘리기도, 자신의 직업에 회의가 들기도, 때로는 범인에게 된통 당하는 순간도 있을 법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범인 측면에서도 독특한 지점이 있다.

작품에서 줄곧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이 인용되는데 여기에서 출발한 범인의 비범한(?) 세계관이 꽤나 흥미롭다.

특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곧 현실과 상상의 결합물이라는 관점이 굉장히 신선했다.

물론 작품에서는 범인이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범인 파트가 수사 파트에 비해 다소 지루한 느낌이 없지 않은데 나름 그 안에서 치밀한 논리를 만들어가기 때문에 잘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범인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이 고통에도 의미가 있을까?

왜 우리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고통의 순간에도 생각만으로는 숨을 끊을 수 없는 걸까?

그것이야말로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 아닐까?

세계를 창조했으되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악한 신 말이다.

(2권 pg 372)

사실 22년이나 지난 사건이 재수사를 통해 해결되는 일이 얼마나 일어날지는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작품의 전개가 현실감이 있었고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최소한의 정의가 실현되는 내용이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도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응당한 댓가를 치러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달래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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