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짜리지만 1권이 끝날 때까지도 유력한 용의자조차 특정하지 못한 채 사건을 맴돈다.
1권에서는 사실 범인이 누구인가 보다는 피해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피해자가 왜 살해당했을까, 피해자가 평소에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언행을 보였었는가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2권부터 매우 유력한 용의자가 등장하면서 사건 해결에 급물살을 타게 된다.
'반전'이라는 단어조차도 스포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여하간 예측하기 어려운 결말이긴 했다.
그러면서도 끝난 뒤 찜찜한 맛을 남기는 부분은 전혀 없어서 좋았다.
내용에서의 특징은 저자가 의도한 바대로 '현실적인' 경찰의 모습이 잘 그려졌다는 것이다.
사실 CSI처럼 말도 안 되는 과학 기술도, 마동석의 무지막지한 주먹도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할당된 업무를 처리해 낼 뿐인 사람도, 출세욕이 넘치는 사람도, 진짜 나쁜 사람들 찾아서 벌주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분명 사람이기에 다양한 감정에 휘둘리기도, 자신의 직업에 회의가 들기도, 때로는 범인에게 된통 당하는 순간도 있을 법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범인 측면에서도 독특한 지점이 있다.
작품에서 줄곧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이 인용되는데 여기에서 출발한 범인의 비범한(?) 세계관이 꽤나 흥미롭다.
특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곧 현실과 상상의 결합물이라는 관점이 굉장히 신선했다.
물론 작품에서는 범인이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범인 파트가 수사 파트에 비해 다소 지루한 느낌이 없지 않은데 나름 그 안에서 치밀한 논리를 만들어가기 때문에 잘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범인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