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약품 모두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는데, '캔-D'의 세계가 가상이라는 것이 명확한 세계라면 '츄-Z'의 세계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약물에서 깨어나도 환각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때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파머 엘드리치'가 보이게 되는 증상에 시달린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이 나타나는 방식과 거의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 현상이 착각이나 상상이 아닌 '파머 엘드리치'의 큰 계획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작품은 심오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져준다.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어디까지 현실이라고 명확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통 속의 뇌' 가설이나 장자의 '호접몽'처럼 증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사실은 꿈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역시 같은 주제의식에서 출발한 영화였으므로 본 작품이 그 영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을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작품에서 미래를 '가능성의 집합' 정도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자도 등장하고 약물을 통해 실제 미래를 관찰하는 자도 등장하지만 그 미래가 필연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작가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미래는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 귀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책을 펴자마자 아래의 글이 등장하는데, 본격적으로 작품을 읽기 전에는 별생각 없이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 읽으면 느낌이 매우 다르다.
이 짧은 메모 안에 본 작품의 주제가 모두 함축적으로 담겨있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