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블러드머니 필립 K. 딕 걸작선 3
필립 K. 딕 지음, 고호관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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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소개된 저자의 책을 모두 읽어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쭉 읽고 있다.

물론 한 저자의 작품이 모두 마음에 들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고 다른 읽을 것들은 넘쳐나는 세상인지라 쉽지 않은 도전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번 좌절을 겪을 뻔했다.

이상하게 진도가 잘 넘어가지지 않아서 처음으로 중간에 그만 읽을 뻔했는데 가까스로 다 읽게 된 책이다.

작품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온 세상에 전쟁이 발발해(작품 내에서 전쟁의 원인은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간 쌓아온 문명이 상당히 쇠퇴해버리고 각종 돌연변이들이 출현한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전쟁의 원인이 자신이라 생각하기에(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도 모호하다.) 가명을 쓰며 은둔해 살아가는 물리학자와 그를 지켜주는 한 정신과 의사, 전쟁 전부터 기형아로 살던 수리공, 자신의 몸속에 죽은 자들과 소통이 가능한 쌍둥이 형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한 꼬마 아이, 화성으로 가려던 로켓에 갇혀 지구를 향한 유일한 라디오 방송 DJ 노릇을 하는 우주비행사까지 짧은 글로 소개하면 도무지 연관성을 추측하기 어려운 인물들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전쟁과 죽음. 실수였다. 의미는 없었다.

스톡스틸 박사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폭력에서 어떤 적의도 느낄 수 없었다.

복수심도 뚜렷한 동기도 없었다.

그저 공허함과 완전한 차가움뿐이었다.

(pg 90)

주요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하피라는 인물은 전쟁 이전부터 기형아로 태어난 사내로 처음에는 물건을 신기할 정도로 잘 고치는 정도의 능력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작품 후반부로 가면 염동력을 쓸 수 있는 것으로 등장하는데, 이 능력이 선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전쟁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돌연변이가 생긴 것인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밖에도 말하는 개나 도구를 쓰는 쥐 등 다양한 돌연변이 생물체들이 출현한다.)

여하간 이 인물의 피해 망상적 사고와 보복심리 때문에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애써 일구어 놓은 작은 사회도 다시 붕괴될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이 주요 내용이라 보면 되겠다.

일단 SF를 표방하는 작품 치고는 배경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애초에 전쟁이 왜 났는지, 돌연변이들은 왜 생기는지, 알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왜 나타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

게다가 내용 전개상 굳이 등장하지 않아도 될법한 인물들이 많아서 전개가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초반에서 중반 정도의 분량은 두 번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몰입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계속 읽었던 이유는 인류가 대재앙을 겪은 후 어떤 행동들을 보일 수 있을지를 그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재앙 이전과 이후의 삶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타인의 가축을 아무렇지 않게 잡아먹고 쥐를 잡아 생식하며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도 먹어야 산다.

식용 버섯에 대한 지식이 의학 지식 못지않게 귀중한 지식이 된다.

이전 시대를 그리워하면서도 지금 처한 환경과 가진 자원으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위로하는 유일한 즐거움은 인공위성에 혼자 갇힌 우주비행사의 라디오 방송뿐이다.

그의 방송이 곧 새로운 인류에게는 종교와도 같은 것이었는데 당연히 그도 인간이니 정해진 수명이 있고 질병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 얄팍한 희망이 흔들릴 때 사람들이 얼마나 절망과 혼란에 빠질 수 있는지도 엿볼 수 있었다.

저자의 작품 중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들부터 읽어서 그런지 요즘 다소 몰입감이 떨어지는 감이 있긴 하지만 계속해서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을 접해볼 생각이다.

재미와는 별개로 읽으면 읽을수록 심오한 맛이 있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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