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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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 형식을 가진 이 작품은 1980년대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는 1990년대에 소개되었다.

국내에 발간된 지도 꽤 오래된 작품인데 지금도 그래픽 노블 분야 베스트셀러에 포진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픽 노블 자체가 슈퍼히어로물이 아니면 그다지 인기 있는 장르는 아닌지라 단순히 발간되는 책이 적어 그런가 짐작만 해왔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열면 故 신영복 교수의 추천사가 눈에 띈다.

이 책이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기 때문에 생의 마지막까지 '인권과 평화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온 고인의 추천사가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물론 작가는 전쟁이 끝나고 태어났기 때문에 전쟁의 기억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전쟁 중에 독살당한 첫째 아이를 비롯해 주변에 죽은 친척들이 너무 많아 우울하게 살아가던 어머니가 끝내 자살로 삶을 끝내고, 아버지 역시 그 모든 죽음과 홀로코스트를 견디며 얻게 된 PSTD에 평생 시달리는 탓에 그의 삶도 그리 평탄하지는 않았다.

책은 작가와 작가의 아버지, 두 남자의 시각으로 전개된다.

가장 큰 비중은 역시 전쟁을 온몸으로 경험한 아버지의 경험담이다.

저자는 특이하게도 유대인은 쥐로, 나치는 고양이로 표현함으로써 그들 사이에 있었던 힘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독일인으로 변장한 쥐는 가면을 쓰고 있다거나, 컷의 배치를 이용해 게슈타포의 수색을 피해 숨어 있는 인물들을 묘사하는 등 세세한 부분에서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제노사이드'라는 단어를 정립하는 계기가 될 정도로 인류 역사상 참혹하기로 손꼽히는 사건이었다.

그 끔찍한 사건을 다룸에 있어서 보기에 거부감이 크지 않은 그림체를 선택했다는 점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덕분에 매우 끔찍한 서술이라 하더라도 읽기에 부담스럽지가 않았고, 그러면서도 흑과 백의 선으로 표현된 차분함과 차가움 역시 느껴져서 사건의 심각성은 온전히 전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은 부분들이 설명으로만 들으면 매우 끔찍한 일이지만, 참혹한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은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인터뷰 내용만으로는 이 책이 갖는 독특한 지점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그 처참함을 모두 겪어낸 이후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는 온갖 강박에 시달리는데 이러한 강박을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서 견뎌내야 하는 작가의 개인적인 고충도 작품의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거나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저장하려고 하는 행위가 전쟁 유경험자들에게서 얼마나 흔하게

발견되는 증상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아래의 페이지처럼 작가 주위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 가운데서도 그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해 작가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는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6.25 전쟁을 겪은 우리 할머니 역시 비슷한 강박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작가의 심정에 꽤 공감할 수 있었다.

실제로 아래의 두 페이지는 우리 할머니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어머니가 할머니에 대해 말하던 것과 너무 비슷해서 소름이 돋았던 장면이다.)

(실제로 작가의 아버지는 저 먹던 시리얼을 가게에서 새 제품으로 바꿔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겪으며 성장한 아버지와 자유 민주주의의 선봉장인 미국을 겪으며 성장한 작가는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자신 역시 차별의 대표적인 희생자면서도 공공연하게 인종 차별 발언을 하는 아버지를 작가는 이해할 수 없다.

악에게 희생되었다고 해서 다 선으로 볼 수는 없다는 명제를 여기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과 다른 인간을 차별할 준비가 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신의 관념을 돌이켜봐야 할 필요성 역시 동일한 무게로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역사서를 읽는 것은 꽤 부담스러운 일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가 유대인과 나치를 각기 다른 동물로 묘사한 이유가 '결코 그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뇌피셜일 뿐이다.)

그만큼 인류는 오랜 역사를 통해 서로 싸워왔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인간의 정신이 그래도 진보한다고 믿는다면 이러한 싸움이 언젠가는 종식되어야 할 텐데 아직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갖는 의미는 현재에도 변함없이 유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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