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꿀벌의 예언 1~2 세트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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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만 보면 벌써 환갑을 훌쩍 넘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최신작이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꿀벌이 사라지면 우리가 식량으로 삼는 농작물들의 수분이 어려워져 식량난에 봉착하게 되고 결국에는 인류에도 위기를 불러온다는 식의 이야기는 자주 들어본 것 같다.

실제로 올해 초 우리나라에서도 꿀벌의 감소세가 심상치 않아 양봉 업계에 타격이 크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었다.

이번 작품은 이러한 꿀벌과 환경이라는 소재를 저자 특유의 전생관에 버무려 낸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 르네는 관객들에게 전생 최면을 경험하게 해주는 최면술사인데, 어느 날 한 관객이 과거의 자신이 아닌 미래의 자신을 경험하고 싶다고 한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지만 '안 될 것 없지'라는 생각에 그 관객에게 미래의 모습을 보게 하는데, 이때의 충격으로 해당 관객이 큰 사고에 휘말려 거액의 소송을 당하게 된다.

현실에서 큰 어려움에 닥친 르네는 마찬가지로 최면을 통해 미래의 자신을 찾아가 보는데, 뜻밖에도 위에서 언급한 꿀벌의 멸종이 실제로 일어났고, 그로 인한 식량난 때문에 세계 3차 대전이 발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래의 그는 현재의 그에게 '꿀벌의 예언'이라는 예언서의 존재를 알려주며 이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중세에 쓰여진 이 예언서의 행방을 찾아 과거로, 미래로 최면을 통한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다.

주목해야 할 소재는 역시나 '최면'이라는 방식을 통한 시간여행일 것이다.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지는 당연히 회의적인 입장이지만 최근에 발간된 저자의 자서전 격인 책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에서 그가 전생 체험을 굉장히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작가는 이를 진짜로 믿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간 저자의 시간관은 아래의 대사에 잘 나타나 있다.

저 나무가 시간을 상징한다고 한번 생각해 봐.

뿌리는 과거를, 줄기는 현재를, 가지는 미래에 해당한다고 말이야.

과거는 땅에 묻혀 있어 보이지 않지. - 중략 -

이런 과거와 달리 현재는 단단하고 선명하지. 하나의 줄기 속에 들어 있거든.

미래는 나뭇잎이 달린 무수한 가지들로 이루어져 있어. - 중략 -

하지만 이 미래의 나뭇가지들은 굵고 단단해질 수도, 가늘어져 꺾일 수도 있네.

작가는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를 정의해 놓은 뒤 웜홀처럼 시공간을 구부려 한 점에서 만나게 하면 상호 소통이 가능하다고 가정하고 있으며 그 웜홀의 발생 방식이 최면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그러한 방식으로 예언서를 둘러싼 인물들의 전생들과 현생의 좌충우돌 모험기가 두 권에 걸쳐 펼쳐진다.

전개에 있어서 놀라운 부분은 저자의 방대한 사전 조사에 따른 역사적 지식들이다.

특히 중동 지역 종교 관련 분쟁의 역사를 꽤나 상세히 알 수 있다. (물론 읽고 나면 금세 잊게 되겠지만)

종교를 둘러싼 인류의 갈등은 특정 종교만의 일방적인 박해나 차별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타인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모든 종교가 공통되게 보여오던 모습이기에 그리 새롭지는 않지만, 그러한 사실들이 가상의 예언서를 둘러싸고 절묘하게 섞여 독특한 맛을 자아낸다.

(물론 역사 수업 같은 부분들이 꽤 많아서 이 부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인간의 인연이라는 것이 이번 생에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거듭해 계속 이어진다고 믿는 작가의 사상이 이번 작품에서도 강하게 드러난다.

르네가 예언서를 둘러싸고 만나게 되는 전생의 인물들이 현생에서도 그의 주변에 존재한다.

물론 그가 이러한 전개를 이번 작품에서만 활용한 것이 아니어서 그의 작품을 자주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다소 식상하다 느껴질 수 있을 법한 전개지만,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자신만의 세계관을 계속 확장시켜가고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롭게 읽은 것 같다.

판타지적인 소재를 사용했지만 저자 특유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현실적인 관찰은 이 작품에서도 계속된다.

무조건적인 악인이나 선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의심과 갈등, 화해와 후회 모두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 중 하나일 뿐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3보 전진, 2보 후퇴를 거듭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 속에서도 여러 배신과 갈등이 등장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예언에 관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저자는 예언이라는 것이 '존재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앞서 '우리에게 굳이 예언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더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미래를 알고 싶다는 욕망은 인류의 오랜 욕망이지만, 이 작품 속의 예언서처럼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미리 알 수 있다면 그 정보의 습득 이전과 이후의 삶은 판이하게 달라질 것 같다.

저자는 아래의 문구를 통해 우리에게 예언이란 결국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시각을 넌지시 내비치고 있다.

예언이 저절로 실현된다는 말은 우리가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입에 올리는 순간

그것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예언이 없었다면 그 일은 일어나지조차 않았을 것이다.

저자의 이전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점이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지만, 재미가 있었느냐고 물으면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작품이었다.

물론 전개에 있어 예측 가능한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아서 '역시 또 이렇게 가는구나' 싶은 지점이 꽤 여럿 존재했다는 점은 고백해야 할 것 같다.

특히 그의 작품을 많이 읽은 독자라면 서사의 흐름을 꽤 많이 맞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나이가 들어가나 새로운 독자는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므로 그의 저작이 아직 새로운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작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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