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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냥 - 죽여야 사는 집
해리슨 쿼리.매트 쿼리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7월
평점 :
'죽여야 사는 집'이라는 부제에 스릴러라는 느낌을 물씬 주는 표지까지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제목만 보면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등장하는 내용일 것 같지만, 악령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주제로 한 호러 소설이다.
보통 그런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잘못하면 다소 허황되거나 유치해지기 마련인지라 실망스러울 수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꽤 재밌게 읽은 작품이며 넷플릭스에서 영상화도 진행 중이라 하니 기본적으로 재미는 충분한 작품이라는 점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줄거리는 꽤 심플하다.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인 해리와 그의 배우자 사샤는 한적한 오지의 집으로 이사하기로 마음먹는다.
이웃이라고는 댄과 루시 부부 둘뿐이며 온통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평생 그곳에서 자연인처럼 살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이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유일한 이웃인 댄과 루시가 찾아와 그 땅에는 악령이 있으며 계절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현현하는데, 특정한 법칙을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죽음이 찾아오게 된다고 말한다.
노인들의 헛소리로 치부했던 해리는 곧이어 그들이 한 말이 진실이며 자신들이 평생 악령의 존재와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어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데, 각 계절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접근해오는 악령과 이를 이해하고자, 혹은 극복하고자 하는 둘의 노력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라 보면 되겠다.
작품의 초반부에는 다소 황당할 수 있는 이 악령이라는 소재를 해리와 독자가 현실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집중한다.
중반으로 가면 악령의 힘이 생각보다 막강하다는 것과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악령의 현현이 횟수로 따지면 그리 잦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댄과 루시처럼 평생 그 기이한 관습에 묶여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2세를 낳아 키우려면 자신들의 아이 역시 그 악령의 존재와 함께해야 하는 것은 물론, 아이가 영원히 그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들을 절망하게 한다.
이 절망을 그들이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를 함께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 읽은 후 느낀 점은 악령에 대한 묘사가 꽤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겨울까지 총 4가지 버전으로 나타나는 악령의 끔찍한 묘사가 돋보이는데,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한두 번만 겪어도 정신이 나가기에 충분할 것 같은 모습들이다.
미국의 호러물 답게 악령의 행적이 꽤 고어하게 묘사되는데, 이는 호불호가 좀 있을 것 같다.
등장인물의 수가 많지 않고 사건이 복잡하지도 않은 데다 내용의 전개도 시간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읽기에 난해한 부분 없이 그저 어떻게 이야기가 마무리될지 궁금해서 계속 책장을 넘기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다만 제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댄과 루시 외에는 딱히 '이웃'도 없는 데다 그들을 사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에 제목이 내용과 따로 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만 원제가 'Old Country'라서 우리 말로 그대로 옮기면 정말 재미없어 보일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내용에 적합하게 '악령의 땅', '저주받은 집' 따위의 제목을 붙이면 너무 식상하고 유치해 보일 것 같다는 고민은 충분히 이해할만했다. (제목이 별로긴 하지만 나도 딱히 좋은 제목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호러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궁금증을 지속하는 전개 덕분에 시작부터 끝까지 흥미를 쭉 유지할 수 있어 500페이지에 달하는 다소 두꺼운 작품이지만 읽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은 것 같다.
넷플릭스로 영상화가 진행 중이라 하는데, 호러를 잘 못 보는 성격임에도 악령의 현현이 어떤 식으로 시각화될지 궁금하긴 하다.
폭염과 폭우가 교대로 찾아오는 요즘, 시원한 집에서 서늘한 공포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