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도시 이야기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시옷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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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쪽으로 독서의 폭을 넓힌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은하영웅전설(이하 은영전)'이 가져다주었던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보통은 한 저자의 작품이 맘에 들면 그 저자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서 읽게 되는데, 다나카 요시키 같은 경우에는 국내에 출간된 작품의 수가 많지 않은 데다 워낙 미완의 작가로 유명한 탓에 다른 작품으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책을 소셜 펀딩으로 출간한다는 소식을 듣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 한 귀퉁이에 내 이름 석 자 남겨보는 사치(?)를 누려보고 싶어 펀딩에 참여하게 된 책이다.

제목에 충실하게 지구에서 모종의 원인으로 대재앙이 일어나 현재의 지도가 완전히 바뀌고 7개의 도시국가가 설립된 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먼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전쟁의 양상이나 사회 배경은 꽤나 옛날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이 괴리를 이해하려면 작가가 심어둔 작품의 설정들을 조금 알 필요가 있다.

먼저 7개의 도시국가가 정치체계나 경제수준면에서 매우 동질성이 높은 편이며 각각이 서로를 견제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일방적으로 다른 도시들을 정복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지구에서 일어난 대재앙 당시 달에 거주하던 인류가 지구의 지배계층으로 등장함으로써 인류에게 하늘을 날 권리를 박탈하게 되는데, 구체적으로는 어떤 물체든 특정 고도 이상 접근할 경우 무인 격추 시스템이 작동해 해당 물체를 파괴한다.

달에 거주하던 지배계층도 결국 파멸을 맞지만 무인 격추 시스템만큼은 자체 작동 가능한 기한만큼 작동하고 있어 7개의 도시는 더 이상 지배계층의 지배를 받지는 않으나 공중으로의 진출은 아직 막혀 있다는 설정이다.

창의적이기는 하나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는지라 개인적으로는 설정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품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전장에서의 수 싸움과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 등 저자 특유의 재미 요소들을 조금씩 찾아갈 수 있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기도 하고 기본 전개나 등장인물들이 '은영전'의 기본 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은영전'을 모두 읽은 독자라면 다소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인상이 강했다.

등장인물들 모두 '은영전'에서 나온 인물들의 해체, 재조합에 지나지 않고 전개 양상이나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모두 유사하다.

다르게 말하면, 15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은영전'이 다소 부담스럽다면 이 작품을 통해 그 맛을 느껴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길이가 짧은 만큼 감동도 적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은영전'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역시나 전쟁이란 권력자들의 필요에 의함이지 결코 민중의 필요에 따른 결정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을 수행하며 목숨을 잃고, 가족을 잃는 것은 유권자이자 납세자이자 국민인 일반 대중들이다.

주권국가와 주권국가 사이에 완전한 평온은 있을 수 없다.

발화점에 이르지 않더라도 마찰은 항상 발생한다.

하물며 한쪽에서 처음부터 방화 의사를 가지고 있으면 얼음조차 불타고 만다.

(pg 105)

"세상은 그런 것이야. 권력이라는 녀석은 타인을 합법적으로 희생시키는 힘이지.

따라서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거고."

(pg 188)

전쟁을 시키는 사람이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보다 궁핍하게 생활하는 예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인류가 전쟁이라는 편리한 해결 수단을 발명한 이래 결코 변치 않았던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pg 216)

사용하는 언어가 복잡해졌을 뿐, 정신 수준은 유치원생과 다르지 않았다.

욕구가 얽힌 만큼 더러워지고, 규모가 커지는 만큼 고생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일단은 대의명분이라는 두꺼운 화장을 칠했다 해도,

고생하는 사람은 출정을 강요당하는 장병들이었다.

(pg 311)

또한 그러한 권력층에게 권력을 안겨준 주체 역시 일반 대중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도 놓치지 않는다.

작품 속 정치인들은 누구 하나 뺄 것 없이 썩어있고, 전쟁을 수행하는 전쟁영웅들 역시 어딘가 한구석 비틀린 면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에게 힘을 내려준 것은 일반 대중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정말 피해자일까.

독재자에게 속았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속은 척한 것이 아닐까.

독재자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질리면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다음 영웅을,

좀 더 가지고 놀 다음 장난감을 찾는 게 아닐까.

(pg 236)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나 하면 그렇진 않으나, 15권이나 되는 '은영전'을 다시 읽기에는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기 때문에 축소판 '은영전' 느낌으로 읽기에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다.

물론 이 작품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있기는 하나, 작가가 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서 차별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할 말은 빼먹지 않고 툭툭 던져놓는 문체 덕분에 읽는 재미도 있고, 간간히 실린 삽화가 부족한 상상력을 도와주기도 해서 읽는 부담이 매우 적은 작품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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