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6월
평점 :
품절


제목이 다소 긴데 쇼펜하우어가 생전에 쓴 수많은 글 중에 인생에 지침이 될만한 짧은 글들을 묶어 낸 책이라 보면 되겠다.

그의 철학이 '염세주의'라는 단어로 대표되기는 하지만 최근에 읽은 책들로부터 그의 철학이 욕구 그 자체로부터의 자유로움을 강조했으며 열반을 추구하는 불교 사상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따위 세상 다 같이 죽어버리자'라는 의도의 사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염세'라는 단어가 붙게 된 이유에는 다분히 서양학자들의 시선에서 본 편견이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여하간 그의 철학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꽤 많은 울림을 주는데 막상 그의 저작들을 읽으려면 굉장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아포리즘이라는 짧은 형식으로 독자들의 심리적 장벽을 낮춰주는 책이 나온 것 같아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엮은이는 고통받는 현시대의 젊은이들이 절망을 새로운 삶의 철학으로 승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법한 글들을 골랐다고 한다.

그 목적에 충실하게 그의 대표작들뿐 아니라 일기나 편지의 비중도 커서 그의 철학 저서들보다 훨씬 그의 삶에 더 가깝게, 그래서 우리의 삶에도 더 와닿게 느껴지는 글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짧은 글들이 여럿 엮여있는 터라 공통된 주제를 뽑아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먼저 그의 철학이 단순히 '염세주의'라는 단어로 요약하기 힘든 이유를 잘 보여주는 글들이 많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그의 삶을 대변하듯, 열심히 주어진 삶을 살아내라는 그의 메시지는 '염세'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인내를 그대의 의복으로 삼아라.

의복을 벗고 다니는 것이 부끄러워지리라. - 중략 -

신념을 그대의 양식으로 삼아라.

육신의 굶주림으로 고통받지 않게 되리라.

신념을 잃은 인간처럼 불행한 인간은 없다.

실패하고 낙오하는 자들은 대게 참을성이 부족하거나 신념을 갖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던 사람들이다.

(pg 38)

우리는 항상 죽음을 떠올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삶이 허락된 이유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난 자들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죽음의 준비는 오직 이것뿐이다.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

두려움과 아쉬움과 남겨진 자들에 대한 걱정으로 죽음의 눈치만 보던 우리들이

당당하게 죽음과 대면하여 공포도, 후회도, 근심도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것.

(pg 48)

거의 200년 전의 철학자지만 그의 통찰은 현재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인간의 사회라는 것이 발전한 과학 기술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아래의 구절들은 현대의 지식인이 썼다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일 정도로 지금의 사회를 잘 설명하는 듯하다.

오늘날 체면과 명예가 그 사람의 전부인 양 절대적인 대접을 받는 이유는

이 시대의 인간관계, 혹은 권위와 신분이 편견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체면을 중시하는 까닭은,

내세울 인간성이 직분에서 얻은 명예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서다.

능력이 없으니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도 못하고, 그런데 또 권력은 욕심나고,

그러니 스스로 자기 이름에 금칠을 해버리는 것이다.

(pg 34)

계층과 계층이 분열되고, 세대 간의 의사소통은 오래전부터 단절되었다.

한 국가 안에 여러 개의 국가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부자들의 나라, 가난한 자들의 나라, 늙은이들의 나라, 젊은이들의 나라가

쉴 새 없이 충돌하고 비난하고 전쟁을 준비한다.

(pg 193)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인상적인 글들도 많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좌절과 고난을 겪게 될 텐데 그럴 때 힘을 줄 수 있을 구절들도 많아서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힐링'이라는 단어가 그리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힐링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간 후가 더 중요하다. - 중략 -

불행은 그 자체로 징계다.

불행이 이미 지나갔는데 자기 징계를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는 비극이 된다.

(pg 152)

스무 살 이후 멈춰버린 몸의 성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정신의 성숙이 필요하다.

정신의 성숙이란 의지로써 마음을 만드는 것이다.

20년간 형성된 의지의 표상으로 이후의 5~60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수학의 기본개념만 깨우쳐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에게 성장 이후의 성숙이 필요한 까닭이다.

(pg 203)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군주와 같다.

그는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자신의 성을 지켜내고, 독립된 지위를 누리고,

그에게 명령하는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의 삶은 스스로 판단한다.

(pg 216)

250 페이지 정도로 얇고 짧은 글들의 모음이라 읽는 데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책은 오래 두고 생각날 때 한두 개씩 읽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각 글마다 어느 저서에서 발췌했는지를 기재해 두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 하나를 제외하면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쉽게 맛볼 수 있어 만족스럽게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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