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죽음
호세 코르데이로.데이비드 우드 지음, 박영숙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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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인터넷에 떠돌던 '혼돈의 카오스' 같은 제목인데 나름 심오한 뜻이 있다.

과학기술의 기하급수적인 발달이 인류로 하여금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할 수 있게 될 날이 곧 오리라는 내용의 책이기 때문이다.

삼단논법의 가장 유명한 예시가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대전제로 시작될 만큼 인간과 죽음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개념인데 이를 과학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라 흥미가 생겼다.

저자는 자연에 이미 수명이 굉장히 긴 생물들이 존재하고, 우리 몸속의 생식세포 역시 노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들며 '노화'라는 것 자체가 극복 가능한 질병으로 취급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곤충이나 작은 설치류 등의 동물 실험에서 이미 적게는 2배, 길게는 4-5배 이상 수명을 증가시킨 실험들을 소개하며 이러한 결과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노화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질병 자체를 치유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또 막대한 자원을 노화의 증상이 아닌 원인에 투입하게 해 줄 것이다.

(pg 106)

책을 읽기 전에는 노화가 만약 과학으로 극복 가능하다 하더라도 일론 머스크나 빌 게이츠 같은 부자들만 영생을 누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부러움을 느끼며 죽어가는 선택지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반박들에 저자는 스마트폰이나 가정용 컴퓨터처럼 우리가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과학기술들이 개발될 당시만 하더라도 인류가 보편적으로 사용할 것이라 기대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노화에 대한 치료 역시 일부 부자나 권력자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암이나 치매 등 보통 노화와 함께 발생하는 질병들은 완치하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이러한 '증상'들에 투입될 자원을 노화라는 '근원'에 투입하여 원인 자체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이 부분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분야에 자금이 집중적으로 투입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이 분야의 발전이 경제적으로도 시장 가치가 매우 클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에 유망한 투자처라는 주장에도 꽤 무게를 싣고 있다.

전 세계 의료비 지출이 매년 약 7조 달러에 달하며,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떠올려보자.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지출이 삶의 마지막 몇 년 동안에 이루어지며, 그럼에도 환자는

상태의 반전 없이 결국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지출에 따른 효과는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전체 의료 시스템을 재고해야 하며,

그 결과 마지막에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pg 229)

인류가 노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근거는 생각 외로 간단하다.

반도체의 성능이 2년마다 2배씩 증가하는 것처럼 의학기술도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시간도 점점 더 단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 발전으로 인한 기대수명의 증가 속도가 우리의 노화 속도보다 빠른 순간에 다다른다면 이론상으로 인류는 영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수명 탈출 속도는 기대수명이 수명이 경과하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연장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수명 탈출 속도에 도달하면 기술 발전으로 인해

기대수명이 매년 1년 이상 증가할 것이다. - 중략 -

커즈와일에 따르면 2029년까지 우리는 수명 탈출 속도에 도달할 것이다.

이는 그 순간부터 우리가 무기한으로 살 수 있음을 의미한다.

(pg 161)

저자가 구체적으로 전망하는 노화 극복의 타임라인은 아래와 같다.

물론 일반적으로 걱정하듯이 여러 기계와 호스에 목숨을 저당잡힌 채 수동적으로 맞이하는 수명의 연장이 아니라 진짜 노화의 극복, 즉 정신과 육체가 온전히 기능하는 수명의 연장을 뜻한다.

인간 노화 역전을 위한 최초의 생명공학 치료법이 2020년대에 상용화되고,

2030년에는 나노기술 치료법이 등장하며,

2045년에는 노화를 완전히 제어하고 역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pg 285)

이후에는 우리가 아직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려 하지 않는 관념적인 부분에 대한 반박들이 이어진다.

많은 근거들이 제시되지만 그 근거 속의 논리는 대동소이하다.

결국 기술은 진보할 수밖에 없고, 그 과실을 목격하기 시작한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꿔서 '죽음을 인류의

가장 큰 적이자 끔찍한 적이지만, 우리가 물리칠 수 있는 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이성적인 두뇌와 마음으로 행동한다면

우리는 '죽음의 죽음'에 도달할 것이다.

(pg 229)

기본적으로 과학과 기술 발전에 호의적인 시각으로 쓰였기 때문에 죽음을 초월하는 것에 얽힌 도덕적 논의가 진지하게 다뤄지지는 않았다.

좀 더 거칠게 표현하면 아직도 이 주제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은 그저 '덜 깨인' 사람일 뿐이라는 접근법인지라 읽은 이에 따라서는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기술 발전의 혜택을 보편적으로 누릴 수만 있다면 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다만 인류의 역사상 불평등은 계속 존재해왔고, 이미 소득과 기대수명이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 분야의 과실이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체감될 수 있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예상해 볼 뿐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사람들의 관념 변화 속도보다 월등히 빠르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야기할 수 있는 여러 사회문제들에 대처할 시간적 여유가 있을지도 생각해 볼 문제일 것이다.

솔직히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사람이 영생을 누릴 시대가 과연 내 생전에 올까 싶은 의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생전에 그런 기술을 만나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보다 기술적으로 가능해진다 하더라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내가 그 기술의 수혜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 더 두려울 것 같다.

참고문헌 목록을 제외하면 약 350페이지 정도로 얇지 않은 두께이지만 저자들의 의견이나 주장보다는 이곳저곳에서 발췌한 사례나 인용문이 많아 생각보다 금방 읽히는 느낌이다.

기대한 것에 비하면 정보의 양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아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달리 말하면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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