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어스 - 기만의 시대, 허위사실과 표현의 자유 Philos 시리즈 17
캐스 선스타인 지음, 김도원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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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라는 책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캐스 선스타인이 이번에는 가짜 뉴스에 대한 책을 냈다.

국내에서도 정치나 연예면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가짜 뉴스 논란이 뜨거운 상태라 저자가 어떤 논조를 펼쳐 냈을지 궁금했다.

몇 년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방송인 타일러가 미국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다른 외국인들과 토론을 했던 내용이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닌다.

이 방송에서 타일러는 미국이 추구하는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가치이기 때문에 가짜 뉴스나 비방, 심지어는 혐오 표현이라 하더라도 이를 법으로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쳐 화제가 됐었다.

(이 책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궁금한 사람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기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Wy7LcYrxFgE)

타일러가 미국인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개인은 아니지만 적어도 미국인들의 보편적인 자유관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의 이면에는 아래와 같은 전제가 깔려 있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부가 허위사실을 처벌하거나 차단하려고 할 때

그들의 진정한 관심사는 허위사실이 아니라 반대 세력이었다.

(pg 105)

저자는 미국인들의 이러한 신념의 근간이 된 몇몇 사건들의 연방 대법원 판례들을 소개하며 현재 미국이 이러한 신념을 가지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해당 판례들이 벌써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가짜 뉴스를 비롯한 허위사실의 유포를 지금처럼 계속 방관해도 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판결이 내려진 때가

1964년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 중략 -

오늘날 명예를 훼손하는, 아니면 파괴적인 발언을 유포하는 것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훨씬 쉽다. - 중략 -

기술의 변화를 생각할 때, 그 판결이 오늘날의 적절한 가치를 조화시킨

최선의 방식을 담고 있다면 오히려 기적일 것이다.

(pg 170)

물론 논지를 전개하기 전에 '허위 사실'이라고 하는 것의 정의부터 꼼꼼하게 고찰한다.

우리가 인사치레로 하는 하얀 거짓말도 넓은 의미에서는 허위 사실이지만 이를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규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허위 사실에 고의성이 있는지(당사자의 의식 상태), 해당 허위 사실로 인한 해악의 크기와 발생 가능성, 발생 시기 등 허위 사실의 규제를 위해 고려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수긍할 만한 지점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국가마다, 문화마다 모든 허위 사실을 규제하는 것과 허위 사실을 전혀 규제하지 않는 것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게 되는데 미국 사회는 현재 규제하지 않는 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다는 것에 저자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 제기의 근원은 역시나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허위 사실이 전파되는 속도와 범위가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또한 해당 정보가 거짓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반복된 거짓 정보는 정보 수신인의 의사결정에 여러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때문에 허위 사실에 대한 규제가 너무 느슨한 것은 표현의 자유는 보장할 수 있지만 오히려 민주주의의 건강성은 저하될 수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책의 중반까지 허위 사실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과 여러 연구 사례들을 공유한 뒤 저자는 아래와 같이 기준점을 하나 제시한다.

허위사실이 심각한 해악을 초래할 위험이 있고, 표현의 자유를 좀 더 보장하면서도

그런 해악을 막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점을 정부가 증명할 수 없다면,

그 허위사실은 헌법적 보호를 받는다.

(pg 125)

영문을 번역한 글이라 무슨 뜻인지 단번에 이해하기 다소 어렵지만, 쉽게 말하면 해당 허위사실의 해악이 크고 정부가 규제 외에는 그 해악을 막을 방법이 없음을 증명할 수 있는 건에 한하여 규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저자의 기준점 역시 국내법에 비하면 매우 소극적인 기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사실을 적시했다 하더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이 가능하니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는 과도하다는 느낌이 없진 않지만, 적어도 혐오 발언이나 심각한 타격을 주는 가짜 뉴스를 민형사상으로 처벌할 수는 있으므로 저자의 기준점보다는 허위 사실을 보다 더 폭넓게 규제하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저자는 해당 기준점을 실제로 적용할 때는 위에서 언급한 의식 상태, 해악의 크기와 발생 가능성, 발생 시기별로 나누어 다양한 규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또한 정부뿐 아니라 온라인을 주도하고 있는 SNS 플랫폼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규제들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해당 규제에 공지나 알림 표시 등 우리 정서로 볼 때엔 '이게 규제인가?' 싶은 조치들도 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수호해 온 미국의 정서로는 저자가 제시한 매우 소극적인 범위의 조치조차도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법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아래의 문장으로 단호하게 책을 끝맺고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이 현실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가로막는 데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pg 216)

자유와 책임은 상충되는 가치이기 때문에 어느 선에서 규정하느냐는 나라와 문화, 역사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일 시기에 미국에 떠돌던 헛소리들이 우리나라 웹 커뮤니티들에 소개되면서 선진국이라 믿어왔던 미국의 이면이라는 반응들이 많았지만 실은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 널려 있다.

다만 그 헛소리가 인터넷을 타고 흐를 때 어느 선에서 규제를 받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그 경계선을 어느 지점으로 설정할지를 나름대로 사고해 보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다분히 미국인의 입장에서 쓴 미국 사회의 자유와 책임에 관한 책인지라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어느 정도의 울림을 줄 수 있을지는 물음표가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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