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SF 소설 쪽으로는 손꼽히는 작가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것이라 SF를 좋아하고 더 알아가고 싶어하는 독자로서 기대가 컸다.
보통 기대가 컸는데 작품이 별로면 글을 쓸 때 고민이 많은데 다행히 이 책은 아무런 고민 없이 느낀 바를 솔직히 적으면 될 것 같다.
제목이 독특해서 제목만 보면 SF 소설이라 생각하기 쉽지 않은데, 총 아홉 편이 수록된 단편집이고 그중 하나의 제목일 뿐이다.
특이하게도 언어가 주제가 되는 작품이 두 작품이나 실려 있다.
표제작은 마치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에 나오는 외계인처럼 미래를 경험한 것으로 기술하는 시제(말 그대로 미래과거시제)를 사용하는 미래인에 대한 이야기다.
시제라는 독특한 소재를 시간 여행이라는 SF 단골 소재와 잘 버무려 인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 같다.
하지만 기억에 더 남았던 것은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라는 독특한 제목을 가진 작품이었다.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이후 인류는 'ㅊ,ㅋ,ㅌ,ㅍ' 등 발음할 때 비말을 내뿜을 우려가 있는 파열음을 아예 쓰지 않는 방향으로 언어를 진화시켜 나간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한 배우가 파열음으로 가득한 지금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 도전하게 되고 그를 지켜보는 이가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데 스토리라인 자체는 단순하지만 그 세계관이 너무 재밌고 매력적이었다.
작품의 서술 자체도 모든 파열음이 바뀌어있어서 처음에는 '오타인가?' 싶었는데 읽다 보면 '배경 진짜 치열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감탄이 나왔다.
SF 단골 소재라 할 수 있는 로봇을 다룬 작품으로는 '수요곡선의 수호자'와 '임시 조종사'가 있는데 그중 '임시 조종사'는 단연코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의 전통 판소리 느낌으로 지어진 SF 소설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어쭙잖게 설명하는 것보단 작품 속 한 구절을 음미해 보면 무슨 의미인지 대번에 이해가 갈 것이다.
아래는 주인공이 로봇에 탑승해 펼치는 게릴라전으로 크게 활약하자 적군이 고민에 빠지는 부분인데, 전통 장단을 잘 모르더라도 판소리하면 떠오르는 그 톤으로 읽어보면 문장에 운율이 잘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