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포함해서 무엇이든 충동구매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제목을 보는 순간 '어머! 이건 꼭 사야 해!'라는 반응이 튀어나와 정신 차려보니 집에 도착한 책이다.
국문 제목이 원제보다 더 거창한 느낌인데, 원제는 'Cannibal Capitalism', 즉 '자기 자신을 잡아먹는 자본주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책은 우리가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저자가 말하는 자본주의란 단순한 경제체제가 아닌 '사회'의 한 유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라는 측면에 국한해서 자본주의를 이해하면 자본주의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제대로 진단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자본의 축적을 최우선으로 움직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종과 젠더, 환경, 정치 등 4가지 분야에서 각기 착취와 수탈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발생한 착취와 수탈이 곧 자본의 축적을 가져오는 과정인데 특이하게도 자본은 이 4가지의 재생산, 즉 지속가능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4가지 분야에서 쌓인 모순들이 다양한 사회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저자는 이러한 개별적인 인식이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해답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통합적인 사회 체제로 보는 시각을 제시하고, 이러한 문제들이 다 자본주의 그 자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논지를 펼치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의 목적이 잉여를 남겨 자본 그 자체를 증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수탈과 착취는 기본적인 현상이고 여기에 인종과 젠더에 따른 불평등이 관찰된다는 것이 그리 색다른 시각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부분 외에 자본주의가 노동력의 재생산 과정조차도 갉아먹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실질소득의 감소, 노동시간의 증가는 당연한 말이지만 노동자가 아이를 낳아 키울 생각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당장에 매일 출산율 최저를 갱신하는 우리나라의 현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세종시의 출산율이 다른 곳보다 높은 이유는 다름 아닌 안정적인 직장과 급여 덕분인 것이다.
저자가 굳이 '수탈'과 '착취'라는 단어를 구분해서 쓰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즉 착취는 잉여 이익을 착취 당하는 대신 노동력 등 투입되는 자원의 재생산 비용은 지급받는 계층에서 발생한다면, 수탈은 그마저도 보장되지 않는 계층(아동 노동, 노예 노동, 강제 노역 등)에게서 발생하는 현상, 즉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 현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젊은 세대의 급여 수준이 자신의 후속 세대를 키울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젊은 세대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수탈'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