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는 우리를 들뜨게 하지
바나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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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은 집사람이 출산했을 무렵부터 지속하고 있는 취미다.

벌써 아이가 만 6세가 다 되어가니 꽤 오랜 시간 즐기고 있는 셈이다.

방 안에 책장 하나 가득, 그리고 창고에 뭉텅이로 들어차있는 실들을 볼 때마다 숨이 막혀오는 것 같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방 가득 차 있던 변신로봇들을 볼 때 집사람의 심정이 이랬겠거니 하며 지내고 있다.

그러던 참에 재미난 제목에 뜨개질을 소재로 한 책이 나와서 집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접하게 된 책이다.

사실 뜨개질로 완성된 물건을 그냥 돈 주고 사는 것이 더 저렴할 정도로 소위 '가성비'가 나오는 취미는 아닌지라 개인적으로는 왜 하는지 그다지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본래 '취향'의 영역에 '이해'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저자도 자신의 취미에 이러한 회의를 느낀 적이 상당히 있는 모양이다.

‘내가 들였던 시간과 노력을 시급으로 환산하면

’도대체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을까‘라는 후회섞인 생각은 지우기가 힘들다.

(pg 74)

일반적으로 뜨개질 하면 그저 저렴하고 고상한(?) 취미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비용도 꽤 들고 피부가 많이 상하기도 하는 취미다.

집사람 손가락에 밴드를 붙여주는 것이 저녁에 꽤나 자주 있는 일과가 되었다.

저자도 비슷한 경험이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내 피부는 성할 날이 없다. 나는 러스틱한 실을 좋아하고 자주 사용한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약한 내 피부인데

작년 겨울에는 러스틱한 실로 너무 오래 해서 검지가 찢어지기도 했다.

(pg 78)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나도 가끔 집사람에게 왜 뜨개질을 하는지 물을 때가 있다. (사람들이 나한테 술 왜 마시냐고 묻는 것과 같이 매우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점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집사람은 마치 스님이 도를 닦듯이 명상하는 작업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나 같은 사람과 살려면 매일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테니 그 마음이 일면 이해가 갈 때가 있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본업은 코딩이고 본인의 직업을 매우 사랑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때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데 집중함으로써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덕질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 빠지다 보면 일반 사람들은 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을 일들을 벌이게 되는데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저자가 직접 실을 염색하는 것에 도전했던 것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도 실 염색은 공장이 아니면 옛날 가내수공업 방식(전문용어로 노가다)으로 해야할 것 같은데, 저자 역시 아보카도 40개를 직접 손질해가며 실 염색에 도전하는 과정이 재미나게 서술되어 있다.

물론 그 결과물은 아래와 같다.

핸드다잉얀은 사는 것이다!

그리고 난 아보카도 40개를 먹은 뒤 단 한 번도 아보카도를 먹지 않았다.

(pg 72)

제목에 충실하게 대부분은 뜨개질에 대한 내용이지만 작가가 살고 있는 아일랜드라는 나라의 감성도 엿볼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 꽤 많이 실려 있는 편인데 마치 여행 도서처럼 사진을 통해 아일랜드라는 생소한 나라의 풍경을 한껏 감상할 수 있었다.

집사람도 이 책을 읽고서 주변의 뜨개인들과 대화를 하다 책 이야기를 하자 대여 요청이 쇄도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역시 뜨개인들이 보면 훨씬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글이 길지 않고 사진도 많은 편이라 읽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책은 아니므로 뜨개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남의 창의력으로 탄생한 작품을 즐길 줄만 알지 직접 뭔가를 만들어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인지라 천천히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알지는 못하지만 뜨개인 반려자와 함께 살아가는 입장에서 집사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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