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 우리의 자화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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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책에 실린 성역화된 PC에 대한 비판을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이번에 나온 '반지성주의'에서는 우리나라의 어떤 현실을 지적하고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반지성주의는 좌우를 막론하고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상대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반지성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며 상대를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다.

저자는 '반지성주의'의 역사를 미국과 일본 사례를 통해 간략히 요약한 뒤 아직 이 단어에 대한 정의가 학계에서 명확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언급한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나는 그런 두 가지 전제와 더불어 반지성주의를

'이성적, 합리적 소통을 수용하지 않는 정신 상태나 태도'로 정의하면서

그 3대 요소로 신앙적 확신, 성찰 불능, 적대적 표현을 제시하고자 한다.

(pg 33)

역사적으로 '지성'이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출발한 반감이 반지성주의의 토대가 된다.

문제는 이 양상이 인터넷을 통한 정보 습득과 맞물리면서 자신이 지지하는 의견에만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상대의 논리는 '무식해서' 생겨난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대깨문'이나 '수구꼴통'을 외치는 사람들이 상대를 논쟁의 대상이 아닌 계몽의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반지성주의적 현상들이 퍼져나가게 되었다는 말이다.

미국 작가 수전 제이코비는 '반지성주의 시대(2018)'라는 책에서

"오늘날 미국에서는 지식인과 비지식인 모두가 똑같이, 좌파건 우파건,

자신의 주장에 공명하지 않는 목소리는 모조리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외고집은 게으른 정신과 빈지성주의의 본질을 드러내는 징후다."라고 말한다.

(pg 9-10)

저자는 이 현상의 산물로 여야를 골고루 예로 들며 까주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마지막까지 높았던 이유로 탁현민의 이미지 정치 전략을 분석하며 비판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성찰을 하는 대신 문제를 감추거나 호도하는 '이미지 연출'에 집착했던

심리의 바탕엔 자신들만이 선하고 정의롭다는 독선과 오만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이게 바로 그 지긋지긋한 내로남불의 온상이 되었다.

(pg 142)

민주당에 표를 던지는 입장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민주당이 좋아서'라기보단 '국짐당이 싫어서'에 가깝다.

(나 역시 책에 등장하는 '약한 정당-강한 당파성 현상'의 전형적인 예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위와 같은 지적은 일면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은 신문 기고글로 대체하고 있다.

가장 통렬했던 지적은 아래의 구절이다.

치외법권이니 뭐니 하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윤석열 부부가

현실 세계의 영역을 벗어난 '픽션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보아야 한다.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그것을 향해 '제발 그러지 마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픽션의 세계'에 들어간 사람들의 귀엔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pg 205)

최근까지 이어졌던 대통령과 영부인에 대한 논란에서 내가 느낀 부분도 이와 유사했다.

무엇이 문제고 사람들이 왜 화를 내는지 그들은 아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런 느낌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찌 됐든 이 책의 핵심은 우리 모두가 지금 편 가르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어느 정권이든 잘한 것과 못한 것이 있을 텐데 우리 편이면 무조건 잘했다고, 상대 편이면 무조건 못했다고 매도하는 정치 현상이 곧 반지성주의적 현상이라는 말이다.

전문가와 지식인은 디지털 혁명이 촉진한 부족주의적 편 가르기에 흡수되었다.

무슨 말을 하건, 반대편 전문가와 지식인만 매도의 대상일 뿐

우리 편 전문가와 지식인은 추앙의 대상이다.

반대편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발산하는 능력이 뛰어난 우리 편 논객들에겐

무한대의 '궤변 면책특권'이 주어졌으며, 그들은 같은 부족 진영 내에서

부족원들의 사랑과 존경까지 누리는 정신적 지도자의 반열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에 따라 '반지성주의는 나의 힘'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로써 반지성주의는 편 가르기와 동의어가 되었다.

(pg 68-69)

잘한 것은 잘했다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제대로 평가할 수 있으려면 상당한 수준의 정보와 분석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다지 재미도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내 입맛에 맞는 정보를 흡수하고 내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들락거리기는 너무도 쉽고 상대의 논리를 옹호하는 '무식한' 사람들을 까내리는 것은 지적인 쾌감마저 안겨준다.

저자 역시 강조한 부분이지만 저자를 포함해 현재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서 자유롭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나 역시 국짐당 지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과는 그다지 말을 섞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나 자신조차 이러한 생각에 변함이 없는 것을 보면 이러한 현상이 사라지기는 커녕 앞으로도 더 강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제목이 '반지성주의'기는 하지만 반지성주의 자체를 소개하는 것은 초반 70페이지 정도고 이후에는 문재인,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의 글이 차지하고 있다.

분량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읽는 부담이 크지 않고 일단 양쪽 모두를 골고루 까주고 있기 때문에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읽어보면 재미있을 책이다.

후반부에 신문에 기고한 글을 그대로 수록하는 등 솔직히 성의가 없어 보이는 측면도 있는 책이지만 그의 세상을 보는 눈이 흥미롭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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