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지평선 - 우리가 우주에 관해 아는 것들, 그리고 영원히 알 수 없는 것들
아메데오 발비 지음, 김현주 옮김, 황호성 감수 / 북인어박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자신의 주변을 늘 알고 싶어 한다.

주변에 대한 지식이 곧 생존의 길이었기 때문에 우리 몸속에 체득된 본능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추구하는 앎의 깊이는 다를 테지만, 본질적인 앎에 대한 굶주림은 인간이라는 종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자연을 끊임없이 작은 부분까지 알고자 하는 욕구가 양자역학을 탄생시켰다면 자연을 끝없이 큰 부분까지 알고자 하는 욕구가 곧 우주과학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과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적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우주에 대해 인류라는 종이 지금 현재 어디까지 알아냈고, 또 어디까지 알아낼 수 있을지를 소개하는 책이다.

단순하게 요약하면, 우리가 우주의 시작이라고 믿고 있는 '빅뱅'이 무슨 현상이며 빅뱅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 대체로 어떤 모습이었고, 지금은 우주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썼다고는 하지만 쉬운 도전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주가 막연히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이해한 것이 온전한 이해라는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알게 된 점들을 저자의 문장들과 함께 정리해두고자 한다.

저자는 초입에서 과학 지식을 쌓는 과정이란 곧 세계지도를 그리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도를 보면 어느 나라가 대충 어느 위치에 있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 나라의 실제 모습까지 알 수는 없듯이 이론이 아무리 정교해도 복잡한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책의 전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다.

우주의 범위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넓기 때문에 최대한 단순화해서 연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이론들이 통합적인 그림이 아닌 파편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파편들을 모으다 보니 현재의 인류는 '빅뱅' 직후 약 100만 분의 1초부터 발생한 일까지도 굉장히 정확한 수준으로 기술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즉 빅뱅 직후 핵융합으로 현재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가장 가벼운 원자인 수소와 헬륨이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생성된 우주의 수소와 헬륨의 현재 비중도 정확하게 계산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자 물질은 우주의 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주의 내용물 중 25%는 원자가 아닌 유형의 물질(암흑 물질)이며, 나머지 70%는 물질조차도 아닌 빈 공간의 에너지(우주 상수)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밝혀낸 결론이다.

'와 아직도 95%나 더 밝혀낼 것이 남아있다는 말이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원자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원자로 이루어진 몸으로 살아가는 인류가 원자가 아닌 물질을 찾아내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우주가 끊임없이 팽창한다는 것은 알던 사실이지만, 팽창하는 우주를 상상할 때 이미 존재하는 우주는 그대로 있고 우주의 가장자리만 계속해서 확장되는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그런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일단 우주에 중심이 있다는 것부터가 사실과 다르다.

우주는 그저 등방한(방향이 없는) 평면이며 중심점이 없기 때문에 어느 한 지점을 중심으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3차원 공간이 시간이 흐르면서 무한정 팽창한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지금 우리가 우주에 관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은 부분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우주를 연구한다는 것은 다른 것의 연구와는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일단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우주가 아닌 우주를 관측할 수도 없고(관측하는 순간 '우리의 우주'가 된다), 우리의 우주처럼 움직이는 미니 우주를 만들 수도 없다.

우리는 실험실에서 우주를 만들 수도 없을 뿐더러,

우주에 관한 다양한 예를 관측할 수도 없다.

우주는 있는 그대로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pg 180)

문제는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는 것 자체도 어려울 뿐더러 우주가 계속 일정한 형태로 있어주지도 않는다.

사실 이 순간에 우리가 보는 우주는 다양한 형태로 아주 오래 지속된 과정 중

일시적인 상태일 뿐이고, 이 상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엄청나게 긴 시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현재 우주의 상태는 지극히 비정형적이다.

(pg 189)

그리고 우리의 과학 이론들은 아직 우주를 하나의 단일한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부분은 과학의 발전이 지속될 경우 인류에게 또 다른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가 나타나 새로운 이론을 주장할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경험적인 연구가 불가능한 우주의 고유한 특성이 극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은하는 양자역학과 전혀 관련이 없고, 원자는 일반상대성이론이 없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원시 우주의 경우에는 이런 분리가 불가능하다.

우리는 엄청난 밀도의 미시적 체계를 설명해야 하는데,

중력을 간과하거나 양자역학의 내용을 무시하고는 설명 자체가 불가능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력의 양자론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런 이론을 우리가 손에 쥐지 못했다는 것이다.

(pg 219)

결국 이 책의 제목처럼 우주에 우리가 도달하지 못할 '지평선'이 존재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저자는 신중한 '불가지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어서 지금까지의 증거들을 취합해 보면, 우리가 미래에도 지금에 비해 월등히 더 혁신적인 우주 지식을 알게 될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예컨대 멀티버스의 존재를 증명한다거나 우리와는 다른 기반(물과 산소가 필요하지 않은)의 지적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있는 우주를 찾아내는 것 등은 불가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학자로서 우주의 근원을 '창조자'나 '신'의 의지로 해석하려는 것에는 명확히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없는 부분은 그냥 '모른다'라고 하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우주의 시작, 즉 빅뱅 이전의 모습은 알 수 없다.

우주의 '지평선' 너머에 또 다른 우주가 있을지, 우리의 우주가 반복적으로 나타날지, 지평선 '너머'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애초에 지평선이라는 단어 자체를 우리가 도달하지 못할 지점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방식을 동원하든 창조자에 관한 개념을 배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주가 작용하는 기본이 되는 규칙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가 아니다.

발생하는 모든 것이 기본 입자의 무의미한 충돌이고,

우리의 존재 자체가 무작위의 차별성 없는 비인간적 체계의

우연한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어서다.

(pg 284)

분명한 것은 저자가 지적한 한계 역시도 과학적 사실의 축적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 한계의 경계선 또한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미묘하게 계속 변화할 것이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물론 우리의 짧은 생애 안에 저자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증명할 획기적인 발견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누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과학은 문화와 사회적 계급의 장벽을 초월해 범세계적으로 공유되어야 하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찾은 최고의 방법이다.

그리고 지식과 진보, 민주주의를 대변할 수 있는 위대한 수단이기도 하다.

(pg 285)

저자나 역자가 쉽게 쓰려고 애를 쓴 것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솔직히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책임에는 틀림없었다.

실제로 읽으면서 내 이해력의 한계를 탓하긴 했어도 책이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려운 개념을 과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사실을 잘 전달하고 있고 과학자로서 과학의 한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우주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가 될 때까지 몇 번이고 읽어보고 싶은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킬 책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