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면 다를수록 - 최재천 생태 에세이
최재천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시작부터 사족이지만 이 책은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종이책만을 고집하던 내가 최초로 완독한 e북이기 때문이다.

액정화면으로 보는 책은 아무래도 집중이 잘되지 않아 기피했었는데 더 이상 시대의 변화에 저항하는 것이 무의미해 보여 쉽고 재밌어 보이는 책으로 도전해 보았다.

(e북 자체에 페이지 정보가 뜨지 않아 발췌문에 페이지 표시를 하지 못했음을 밝힌다.)

최재천 교수는 최근에 유튜브 활동도 활발히 해서 책보다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말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쓰기는 어려운 일인데 최재천 교수는 둘 다 뛰어나다는 평이 많아 쉽게 읽을 수 있는 그의 에세이 책을 하나 선택했다.

에세이집이라 짧은 글이 여러 편 실려 있고, 다루는 주제도 여러 가지다.

생물학자로서 살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다양한 생물 설명과 함께 표현한 책이라 보면 되겠다.

한 유튜브 강의에서 저자가 누군가 자신의 문장을 허락 없이 수정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문장에 자부심이 있어 보였는데, 이 에세이집 역시 인상적인 문장들이 많았다.

읽으면서 기억에 남았던 문장들을 소개하고 내 소감을 간단히 곁들이고자 한다.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그걸 모르고 우리는 농사를 짓는답시고 한곳에 한 종류의 농작물만 기른다.

해충들에겐 더할 수 없이 신나는 일이다.

구제역이나 광우병이 일단 발발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까닭도

우리가 가축들을 모두 한곳에 모아 놓고 기르기 때문이다. - 중략 -

정말 심각한 문제는 바로 유전적 다양성의 고갈이다. - 중략 -

앞으로 이런 전염성 질병이 몰고 올 재앙은 점점 더 빈번해지고

그 규모도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책의 제목이 '다르면 다를수록'인 이유가 담긴 구절이다.

이 책이 2017년에 나왔으니 작가가 코로나19를 예상했을 리도 없었을 텐데 자연은 마치 우리에게 보란 듯이 전염성 질병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었다.

자연은 늘 다양하려고 애쓰는데 인간은 다 똑같은 모습으로 바꾸려 노력한다.

유전자를 개량할 수 있는 기술이 인간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오는데 저자는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유전적인 다양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의 고유한 유전자를 남들이 다 좋다는 유전자로 바꾸기 시작하면 우리 스스로를 가축이나 농작물처럼 만드는 셈이다.

모두가 똑같은 가방을 메야 하고, 모두가 똑같은 구두를 신어야 하고,

모두가 똑같은 춤을 춰야 하는 우리나라는 특별히 큰 재앙을 맞이할 것 같아 걱정이다.

복제 인간 몇 명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

유전자 종교'를 신봉하는 인간 교인들이 스스로 자연 앞에 무릎을 꿇을 일이 더 무섭다.

또한 진화생물학자로서 그가 사회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도 엿볼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많은 원인이 유전자의 대물림과 연관되어 있다.

인간 또한 생물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동물을 관찰하며 그가 얻은 통찰은 인간사회에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

진화생물학자인 나는 늘 삶과 죽음을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생물이 탄생하는 것도 결국은 유전자가 더 많은 유전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기계를 제작하는 과정이고, 우리가 그토록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는 죽음도

유전자가 더 이상 기계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폐기 처분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N포세대가 등장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는데 아래와 같은 구절을 보면 사실상 우리 사회는 죽은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진화학적으로 보면 자기 번식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큰 희생은 없다.

생물이 무생물과 다른 근본적인 차이점이 자기 증식일진대,

자기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지 못한다는 것은 진화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사실상 죽음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저자는 사회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펼쳐낸다.

죽은 사회를 생기 넘치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불어 사는 삶이 중요하다고, 우리보다 훨씬 더 열등하다고 믿는 생물들조차도 더불어 살 줄 안다고 말이다.

생태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네 관계들 중 경쟁과 포식 그리고 기생이 가장 흔하며 '성공적인' 관계들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여 년간의 연구로 이들 못지않게 수많은 생물들이 공생의 지혜를 터득하여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악의에 의한 관계는 자연계의 그 어느 곳에도 발을 붙이지 못했다. 인간 사회를 제외하고.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동물 사회가 우리가 생각하듯 매 순간 약육강식의 법칙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들보다 훨씬 더 고등한 존재라 주장하는 우리는 더욱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예로 든 것처럼 딱딱한 주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아래처럼 재미난 글도 많아 읽는 재미가 충분한 편이다.

우리 인간이 언제부터 사랑의 증표로 꽃을 주고받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주 가끔 아내의 가슴에 꽃다발을 안겨 줄 때 사실 머릿속으로는 꽃의 생물학적 의미를 떠올린다. 화려한 성기를 선물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워낙 다루는 주제가 광범위해 모두 소개하긴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그의 태도가 잘 보이는 글들이었다.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의 전문 지식을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꼰대스럽지 않게 자신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고심해서 쓴 흔적이 책 구석구석에서 충분히 느껴졌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자연 보존에는 전혀 약이 되지 않는 속담이다.

자연은 알아야 보존할 수 있디.

대학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학자들이 이렇게 일반 대중을 상대로 자신의 전문 지식을 알릴 수 있는 시도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연과학처럼 일반 대중들이 느끼기에 거리감이 좀 있는 학문에 투신하고 있다면 더욱 일반적인 교양서 수준의 저작물을 많이 써주었으면 좋겠다.

독자들도 그런 책들을 많이 읽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누구에게라도 선뜻 추천해 줄 만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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