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유리 - 그래픽노블로 만나는 AI와 미래 탐 그래픽노블 3
피브르티그르.아르놀드 제피르 지음, 엘로이즈 소슈아 그림, 김희진 옮김, 이정원 감수 / 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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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가 오고 있다.

관련 기술이 갈수록 더 발전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알파고의 등장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도 상당히 높아졌다.

나 역시도 관심이 가는 분야인데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그래픽 노블이 발간되어 기쁜 마음으로 읽어보았다.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야 보편적인 것이라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미국의 한 미술 대회에서 AI가 그린 그림을 출품한 작가가 수상을 한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기에 본 작품에 더욱 관심이 갔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역시 '음악을 만들 줄 아는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유리'가 바로 그 인공지능의 이름이다.

작품 속 소개로는 AI가 스스로 선택한 많은 단어 중 사람 이름과 가장 유사해 보이는 것을 골랐다고 한다.

책 소개에 나오듯이 한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해 랩 음악을 들려준 것을 계기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당연히 위의 미술 대회에서처럼 AI가 만든 음악이 음악으로서의 가치가 있느냐는 논쟁이 따라붙는다.

처음에는 아래와 같은 의견이 설득력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pg 13)

하지만 위의 미술대회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 대부분은(더 솔직하게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도) AI의 작품과 사람의 작품을 더 이상 구별할 수 없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 작품 속 유리를 만난 심사위원들도 음악만 들을 때는 유리를 통과시켰다.

이때 과연 AI의 작품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지, 또 그 작품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가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AI 역시 인간이 활용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 논리를 위의 논쟁에 그대로 적용해 보면, 사람이 AI를 시켜 그린 그림은 포토샵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려낸 그림과 논리적으로 동일하다.

그렇게 본다면 현재 포토샵 결과물의 저작권이 해당 작가에 귀속되지 어도비에 귀속되지는 않듯이, AI가 그린 작품 역시 해당 AI에게 지시를 내린 사람에게 귀속될 것이고 AI의 개발자는 해당 AI의 사용료 정도만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용자와 개발자가 같은 인물이라면 논란이 안되겠지만 대체로는 그 둘이 다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작품이 온전히 작가의 역량으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의견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AI가 다른 도구와 다른 점은 스스로 계속 진화하는데 그 진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처음의 유리는 누가 봐도 이상한 대답을 하는 불완전한 AI였지만, SNS를 통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답변을 하도록 했더니 점점 더 진짜 사람 같은 대답들을 하기 시작한다.

답변이 어찌나 뛰어난지 심지어는 자식을 잃은 부모가 아이의 생전 SNS 기록을 모두 넘겨줄테니 자식처럼 SNS에 글을 써 줄 AI를 만들어줄 수 있는지 의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서 AI를 둘러싼 또 다른 논쟁거리가 등장한다.

AI가 인격을 구성하는 어느 부분을 대체해도 괜찮은지에 대한 논란이다.

저자는 아래와 같이 윤리적으로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작품 속 인물은 픽션이므로 저자 본인은 물론 아니겠지만, 저자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pg 126)

작품 속 인물은 위와 같이 단호한 입장을 취했지만 내 생각에는 이런 분야로도 언젠가는 활용되지 않을까 싶다.

AI가 인격의 일부분을 대체하는 느낌이라 윤리적으로 옳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으나, 달리 보면 그것이 사람을 위로하는 방식으로도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예컨데 죽은 가족에게 차마 전하지 못한 말이 있는데 마치 그 사람이 살아 있었다면 했을 법한 대답을 들려주는 AI라면 사용자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물론 그 선을 유지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긴 할 것이다.

이 책에서도 반쯤은 냉소적인 유머로 넣은 장면일 것이라 생각하기는 하나, 한 사람이 AI에게 애정을 느낀다면서 자신을 새로운 성소수자로 소개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미 영화 'Her'에서 호아킨 피닉스가 비슷한 역할을 연기했었으니 과한 상상력도 아닌 셈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AI를 마치 새로운 인간을 창조한 듯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학습하는 존재처럼 생각하지만, 실제 AI는 그저 인간이 반복적으로 쌓아놓은 거대한 데이터를 습득해 일정한 패턴을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AI에게 무슨 데이터를 입력시키느냐가 AI의 퀄리티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저자는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인공지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습니다.

도로 교통을 조절하고, 구매 제안을 하고, 테러리스트를 색출합니다.

그리고 유리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우리 사회의 거울이자 확장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단순한 행동만을, 그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행동과 결정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머지않아 인공지능에 통합되어 미래 세계를 만드는 데 이용될 것입니다.

(pg 91)

되게 덤덤한 말 같지만 생각해보면 매우 무서운 이야기다.

내가 무심코 올린 SNS 게시글, 답글, 인터넷 포스팅들이 AI의 학습 기초 자료가 된다.

물론 '내가 ' 썼다는 기록이 남지는 않는다고 하지만(솔직히 못미덥기도 하고) 내가 남긴 흔적이 나보다 더 오랜 수명을 가진다는 것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작품 속 유리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사람들이 그를 대통령 후보로까지 추천하기에 이른다.

물론 최근에 있었던 대한민국 대선에서 '차라리 허경영이 낫지 않나?' 정도의 느낌을 주는 장면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후보는 작은 의미가 아니다.

저자는 인터뷰 형식을 빌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정교해질수록 그들이 살아 있다고 느끼는 우리의 환상은

더욱 공고해질 거에요.

그들이 지적이며 주체적인 인격을 가진 존재라고 믿게 되겠죠.

완벽한 환상과 현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죠."

"바로 그겁니다. 제가 오늘 카메라 앞에서 유리의 인격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저는 이 영상을 빌미로 40년, 혹은 50년 뒤에 비난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종족 차별주의자였군요.'

물론 지금으로서는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지만요."

(pg 128)

저자의 마지막 문제 제기는 유리가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냐는 것이다.

유리를 인격으로 부를 수 있다면 우리의 정신 역시 AI로 복제해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한다.

개인 정보의 유출을 두려워하던 사회가

이제는 개인 정보를 퍼뜨리는 것이 불멸의 열쇠라고 생각하게 된 거야.

물론 기계를 통해 오래 살아남을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의 존재 가치는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생겨나는 게 아닐까?

우리의 박제된 버전이 살아남게 되겠지만, 그건 모든 위대한 종교가 약속했던,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내세의 모습은 아니잖아.

(pg 160-161)

책 전체를 통틀어 저자가 하고 싶던 말은 아래와 같다.

결국 AI도 인간의 필요로 만들어진 도구 그 이상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유리 안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요.

여러분의 머릿속에서나 존재할 뿐이죠. 소설 속 주인공처럼요. - 중략 -

인공지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 중 가장 훌륭한 도구죠. - 중략 -

그래서 우리가 매 순간 자유를 노래할 수 있게 해 줄 거에요.

(pg 188-189)

물론 자유를 노래할 수 있는 '우리'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속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처럼 부가 특정 계층에 몰리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AI의 발달로 인한 결실도 결국은 소수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의 잘못이지 AI의 잘못은 아니다.

러다이트 운동으로 직장을 잃은 원망을 기계에게 풀 것이 아니라 기계의 소유자에게 돌려야 옳았을 우리의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실 작품 자체는 흥미 위주로 읽으면 금세 읽을 수 있는 쉬운 책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AI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작품에서 던져주는 문제들에 내 나름의 생각을 많이 덧붙이게 되었다.

어렵지 않게 쓰여 있기 때문에 어린 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AI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봄직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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