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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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 아닌지라 나는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이미 엄청난 베스트셀러들과 수상 기록,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들까지 많은 기록을 가진 거물 작가였다.

작가의 이력이 화려하니 책을 읽기도 전에 기대가 컸다.

다 읽은 후 처음 든 소감은 '역시 괜히 유명한 작가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스토리도 단순하다면 단순한 편이고 엄청난 반전이나 스릴을 담은 내용도 아닌데 흡인력이 굉장했다.

문장도 군더더기 없이 딱 내용 전개에 필요한 문장들만 있는 느낌이라 금세 다 읽을 수 있었다.

장래가 유망한 명문대 학생이었던 쇼타는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여자친구가 갑자기 찾아오라는 문자를 보내는 바람에 음주 운전을 하다 한 고령의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다.

목격자가 없었고 자신이 사람을 치었다는 사실에 겁이 난 쇼타는 뺑소니로 달아나 버리지만 금방 검거되고 만다.

4년여에 걸친 형기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쇼타는 자신 때문에 부모님은 이혼하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등 가족들에게도 피해를 끼쳤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워 일용직을 전전하며 세월을 보내던 쇼타의 앞집에 피해자의 남편인 노리와가 이사를 온다.

피해자의 남편이 쇼타를 찾아간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이 이 책의 큰 줄거리라 할 수 있겠다.

소설에서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나라에서 법으로 강제한 처벌을 온전히 받았다면

충분한 속죄라 할 수 있는가?

쇼타 역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낀다.

자기 때문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피해자는 물론이고 갑작스럽게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분명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죄책감 때문에 죽은 피해자가 환각과 환청으로 찾아와 괴로운 시간들을 보낸다.

하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창창했던 자신의 미래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20대의 절반을 형벌로 보낸 것에 대한 억울함도 동시에 느낀다.

게다가 자신의 가족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쇼타로 인해 삶이 망가져 버렸다.

죄책감과 억울함이라는 상충되는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쇼타에게 갑자기 피해자의 남편이 칼을 들고 찾아온다.

고령인 데다 치매까지 앓고 있던 그는 필사적으로 쇼타에게 접근한다.

주변 사람들은 단순히 복수를 하기 위함이라 여겼지만 그는 쇼타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한다.)

읽다 보면 대충 결말을 예측할 수 있는 전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감동을 주는 결말이었다.

쇼타가 바로 구속됨에도 불구하고 왜 제목이 '도망자'의 고백인지도 결말을 보고 나면 온전히 이해된다.

사회에서 부여한 처벌을 모두 받고 났다면 당연히 그 범죄자에게도 제2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내가 만약 피해자이거나 피해자의 가족이라면 심정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쇼타와 노리와가 보여준 결말은 진정한 속죄와 용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쇼타가 저지른 범죄가 사실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 사고로 가족을 잃는 것 역시 경험이 있든 없든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감정인지라 등장인물들의 심정에 더 공감이 잘 되는 느낌이었다.

"인생에서 20대만 귀중한 시기인 건 아니야!"

아야카가 소리 지르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 앞으로 올 날이 훨씬 귀중하단 말이야."

(pg 336)

영상화가 되어도 좋을 것 같은 작품이지만 사건의 흐름보다는 등장인물들의 감정 변화가 중심인 느낌이어서 책으로 읽을 때의 감동을 따라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읽는 재미 자체도 탁월했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도 좋아서 꽤나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난 느낌이다.

작가가 많은 작품을 쓴 편이라 바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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