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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꾼의 아들 1~4 세트 - 전4권
샘 포이어바흐 지음, 이희승 옮김 / 글루온 / 2022년 5월
평점 :
총 4권으로 구성된 '매장꾼의 아들'을 4권까지 모두 읽었다.
4권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더운 여름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면서 가볍게 읽기에 딱 좋은 판타지 소설이라는 것이었다.
1권에서 '뼈를 보는 자'인 파린과 '환영을 보는 자'인 아로스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진 뒤 2권부터 본격적인 스토리 전개가 시작된다.
1권에서도 소감으로 남겼듯이 작가의 문장이 상당히 좋은데 번역도 너무 깔끔해서 읽다 보면 이 책이 외국어를 번역한 것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아서 좋았다.
덕분에 권당 500페이지 안팎으로 분량이 그리 짧지 않은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그리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악령의 힘을 얻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파린은 악령의 힘을 남용하지 않고 항상 동료들을 먼저 생각하는 그야말로 주인공다운 행보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매장꾼이라는 사회 최하위 계층으로 태어난 신분의 한계도 점점 더 극복하게 된다.
반면에 어린 나이에 환영과 마법 능력을 가지게 된 아로스는 태생적으로 타인을 쉽게 신뢰하지 못했다.
그러던 그녀에게 키라는 조력자가 나타나게 되고, 이 조력자와 함께 우여곡절 끝에 파린을 만나면서 그녀의 내면도 한층 더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극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역시나 파린 안에 있던 악령일 것이다.
악령이라는 존재답게 파린에게 '악마의 속삭임'을 끊임없이 주입했었지만 파린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선한 인간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나름 반전 있는 행보를 보여주기도 한다.
1권부터 등장한 두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만난 후 힘을 합쳐 배후의 악을 물리쳐가는 전형적인 스토리를 기대했었지만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같이 활동하는 건 3권에 이르러서일만큼 생각보다 이야기의 흐름이 선형적이지 않다.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남으면서 작가가 의도한 포인트로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나아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4권 중반에 이르러서도 진짜 배후가 누구인지 등장하지 않아 궁금함을 가지고 읽으면서도 '이거 끝을 어떻게 맺으려고 이러나'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때로는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때로는 우연으로 역경들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재미나게 잘 묘사되어 있다.
결말이 4권 후반부에 이르러 다소 후다닥 끝나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찜찜함을 남기거나 후일담이 지나치게 생략되어 있는 느낌도 들지 않는 깔끔한 결말이어서 좋았다.
스토리 스포일러를 되도록 피하고 싶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라는 영화의 결말이 떠오르는 엔딩이었다.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이 있는 편이지만 책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왔다면 예측 가능한 범위였다고 생각된다.
(사족이지만 작가가 스스로 '반전'이라는 단어를 굳이 쓰면서까지 서술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사실 문학보다는 비문학을 더 선호하는 독서 습관 때문에 판타지 소설은 거의 접해본 적이 없어서 다른 작품들과의 비교는 어렵지만, 이 책 자체는 상당히 재미있었다.
스토리가 살짝 유치한 느낌이 없진 않으나, 뻔하진 않기 때문에 마블 영화를 '유치해서 못 보겠다'라는 사람이 아니라면 충분히 수긍할만한 유치함이었다.
500페이지 정도 되는 4권의 작품인 만큼 짧지 않은 길이지만 스토리를 일부러 질질 끄는 느낌도 없고 필요한 사건들이 필요한 만큼 잘 다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인 저자답게 약간 강박이 느껴질 정도로 4권이 거의 균일한 두께로 제작되어 모아두면 책장이 예뻐지는 것 같은 부가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장르소설 중에서도 SF나 추리물에 비해 판타지 소설은 손도 잘 대지 않았는데, 이 책이 판타지 소설에 대한 나의 편견을 많이 깨준 것 같다.
이러나저러나 소설을 읽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재미'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처럼 판타지 소설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판타지 광팬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만족하며 읽을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