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 프롬 - 내 안의 힘을 발견하는 철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24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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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4권째 발매된 서가명강 시리즈. 나도 벌써 그중 세 번째 만나는 책이다.

철학 책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긴 하지만 에리히 프롬의 사상은 처음 접했다.

다른 철학 책들은 그래도 학창 시절을 지나면서 이름이라도 들어본 것 같았는데 에리히 프롬은 이름도 생소해서 어떤 사상을 펼치고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에리히 프롬의 저작은 대중적으로 상당히 많이 읽힌 편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쓰여진 탓에 철학계에서 다소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아직도 어려울수록 뭔가 있어보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철학계에는 강하게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내 나름대로 소화한 이 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인간에게 자유라는 것이 생기면서 필연적으로 인간은 고독감과 무력감, 허무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을 제대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능력을 갈고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웬 사랑타령인가 싶겠지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은 성애나 애정 같은 개인 간의 사랑에 그치지 않고 범 지구적인, 다른 단어로 표현하자면 '인류애'와 비슷한 개념의 사랑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개념을 설명하기에 앞서 인간이 왜 고독감과 무력감, 허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삶은, 약화된 본능 대신에 이성과 상상력을 갖기 때문에 사로잡힐 수 있는

'고독감'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pg 109)

인간은 단순히 본능에 이끌려 살지 않는다.

오히려 본능에 이끌려 살아야만 한다면 그 삶에 의미가 없다고까지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다.

발정기가 되면 본능에 내몰려 교미하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에게 있어 사랑이 결부되지 않은 성행위는 씁쓸함을 남긴다.

식욕 역시 인간은 단순히 허기를 때우기 위한 욕망에서 그치지 않고

사물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질을 맛보고 즐기려는 욕망과 결부되어 있다. - 중략 -

단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경우에는 식욕과 성욕 같은 생리적 욕망도

실존적 욕망과 긴밀하게 얽혀서 나타나는 것이다.

(pg 129)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존적 욕망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었다고 해서 만족스럽게 살 수 없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라는 다른 동물들은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을 인지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은 단순히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없거나 굶주리고 있기 때문에 자살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고독감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감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다시 말해 실존적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pg 129)

인간에게 자유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이 실존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오로지 개인의 책임으로 남게 되었다.

오랜 역사를 거쳐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권위를 가진 누군가의 지시나 명령에 의해 살아가야 하는 노예였던 인간의 입장에서 '자유'라는 개념은 좋지만 낯선 것이었다.

이런 인간이 실존적 욕망의 좌절을 느낄 때 찾아오는 감정이 바로 고독감과 무력감, 허무감인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이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경향이 생겨난다고 보고 있다.

독재체제는 사람들을 이렇게 자동인형으로 만들기 위해 위협과 공포를 사용하고

민주주의 사회는 암시와 선전을 이용한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의 의견을 소수가 비판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독재체제와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압도적으로 공통의 여론과 관행이 지배한다.

더 나아가 프롬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공통의 여론과 관행을 따르도록 강요받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 그러한 여론과 관행에 따르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pg 208)

인간이 이렇게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게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가장 극단적인 예시로 나치에 대한 독일 민중의 지지를 들고 있다.

사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미국이나 독재자의 딸을 당선케 한 한국의 대중도 비슷한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가 없었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로 파시즘적 리더를 선출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세에서 벗어나 참된 자아와 자유를 구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에리히 프롬은 아래와 같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1. 소유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2.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한다.

3. 과거에 대한 회한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 완전히 존재한다.

4. 자기 이외의 어떠한 인간이나 사물도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5.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속지도 않는다.

6.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수양한다.

(pg 240-241)

요약한 내용이긴 하지만 당장에 1번만 봐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개인이 해야 하는 일뿐 아니라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 하는지도 제시하고 있는데, 개인에게 요구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사회가 변화하기는 얼마나 어렵겠는가.

에리히 프롬이 제시한 사회 변화의 방향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소유양식'이 아니라 '존재양식'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도 어렵지만 현실화하긴 더 어려운 일이다.

저자 역시 에리히 프롬의 해결책이 현실화하기는 좀처럼 어려울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이상으로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한다.

우리는 전대미문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으며, 또한 많은 여가 시간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얼마든지 진정한 자유와 개인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관료주의'를 극복하기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것이다. - 중략 -

이를 위해서는 각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경제적인 힘을 분권적으로

조직함으로써 개개인이 그러한 힘의 주인이 되는 사회를 건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pg 253)

책을 다 읽고 가장 먼저 느낀 점은 에리히 프롬이라는 이름은 생소했지만 그의 철학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의 철학이 마르크스나 프로이트 등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은 물론 기독교, 불교 철학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해결책이야 어떻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적 현상과 그 원인을 잘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철학의 부재를 외치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읽어봄직한 책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서 다른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되고 완전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인간들을 필요로 한다.

(pg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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