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한국 기업에 거버넌스의 기본을 묻다 서가명강 시리즈 23
이관휘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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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을 공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 제목만 봐도 '주주지 뭐'라고 생각할 테지만 생각보다 기업이 진짜 '누구의 것'인지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특히나 재벌 경영 체제가 대표적인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고 표현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틈틈이 삼성전자 주식을 사 모으는 동학개미들이 과연 삼성전자의 주인이라 할 수 있을까?

솔직히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인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된다.

미국에서는 1나노초에 주식을 사고파는 초단기 거래도 증가하는 추세라 한다.

어쨌든 그 1나노초 동안은 그 사람도 그 기업의 주주임은 부정할 수 없다.

저자는 세상이 이런 추세로 변해가는 요즘에도 과연 주주가 기업의 주인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주당 1센트씩 총 60주를 사들여봐야 얼마나 벌겠느냐고? 글쎄, 과연 그럴까?

아침 9시부터 장을 닫는 오후 4시까지의 7시간(뉴욕증권거래소의 경우)은 1나노세컨드가 10억 분의 1초이니 25.2조 나노세컨드가 된다. - 중략 -

이런 식으로 그 큰돈을 벌어도 괜찮은 건지 마음이 편치 않지만

어쨌든 초빈도 거래자들도 1나노세컨드 동안만큼 주주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1나노세컨드 동안 주주였다가 바로 다음 1나노세컨드 동안은 아니었다가를

반복하는 이들을 위해 경영자가 열심히 일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pg 36-37)

그런 다음 주주와 채권자, 주주의 이익을 실현하는 대리인인 경영자, 경영자를 감시하는 이사회의 역할과 서로의 견제 기능에 대한 경영학적 시각들을 소개한다.

경영자와 주주, 채권자, 이사회의 상호 간 정보 비대칭은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는 만큼 이 정보격차를 좁히기 위한 여러 법적 제도들을 갖추게 되는데 이 수준이 국가들마다 상이하게 나타난다.

여느 사회문제들이 다 그렇겠지만 이 역시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규제가 너무 심하면 투자자들이 해당 국가에 투자하는 것을 꺼려 하기 시작해 경기가 침체될 것이고 규제가 너무 느슨하면 경영자들의 편법 행위로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빈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의 분량이 생각보다 긴데, 저자가 개념에 대한 설명은 쉽게 한 것 같으나 용어에 대한 설명이 좀 적어서 경영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용어 이해에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부록으로라도 주요 용어에 대한 설명을 붙여두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어쨌든 긴 설명의 중점은 주식시장에도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 규제를 통해 각 이해관계자들의 정보비대칭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소액주주에 대한 보호가 중요하다는 것 정도가 될 수 있겠다.

몇몇 대주주보다 소액이라도 다수의 사람이 투자하는 쪽이

주식시장 발전에 더 이롭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액주주 보호가 잘 되어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나라들보다

주식시장이 더 빠르게 발전하고 규모도 커진다. - 중략 -

소액주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도 더 수월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고, 더구나 그 자금은 대주주들의 참견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pg 201-202)

그럼 왜 신흥시장일수록 동조성이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일까? - 중략 -

정답은 놀랍게도 기업지배구조에 있었다.

동조성이 낮은 국가들일수록 평균적으로 소액주주에 대한 보호가 잘 이루어져 있고

기업지배구조 체계도 더 발전되어 있었다.

(pg 206)

저자는 여러 논문을 인용하며 주장을 이어가는데, 이 중에서는 얼핏 보기에는 기업의 성과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요인들이지만 연구결과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진 재미난 사실들도 있다.

그중 두 가지만 아래에 소개해 본다.

아래 두 사례를 요약하면, 경영자와 이사진의 정치적 성향이 다르고 경영자에게 딸이 있다면 그 기업이 보다 바람직한 경영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사진과 경영자의 정치적 성향이 같은 경우에는 경영자가 낸 성과가 매우 저조하더라도

이사회가 보수를 깎거나 해임할 가능성이 확연히 줄었던 것이다.

저자들은 여기에 더해 이런 회사일수록 경영자들이 회계 장부를 조작할 가능성 또한

더 높았다는 것을 찾아냈다.

(pg 115-116)

그들은 자녀의 성별이 최고경영자의 경영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었다.

분석 결과, 사회적 책임 지수가 높은 기업의 최고경영자들 중에

특히 딸을 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중략 -

딸이 있는지의 여부가 조직 문화의 평등함과 다양성을 결정짓는 데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실증연구를 통해 확인한 셈이다.

(pg 229)

그럼 문제점을 알았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저자는 그 해결책의 하나로 최근에 떠오르고 있는 ESG(Environment, Society, Governance)를 소개하고 있다.

기업들이 소극적인 사회적 책임을 넘어 환경(E)과 사회(S)에 기여하는 것이 곧 기업의 목적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G)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 전략 - 환경, 자연, 사회의 모든 문제들은 기업에 대한 처벌의 강화가 아니라

기업이 수익을 쫓아가는 비즈니스 추구 자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기업의 목적 자체를 주가 극대화가 아니라

공공의 부의 극대화로 새롭게 정립해야 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자연스러운 비즈니스 전략을 찾도록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pg 234-235)

최근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주주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

점차 더 많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 자체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도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도록 만드는 커다란 변화가

이미 닥쳐오고 있기 때문이다.

(pg 237)

글의 마무리 즈음에는 재벌 위주의 한국 기업 문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탄식으로 끝을 맺고 있다.

소액주주들에 대한 보호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재벌들의 불법 증여와 이를 통한 기업 지배력 강화도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법적으로 처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큰 일 하셔야 되는데 감옥에 있어서야 쓰겠나'라는 대중들의 어처구니없는 인식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주주만이 기업의 주인은 아니라는 흐름이 밀려오는데,

한국에선 아직 주주조차 기업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pg 250)

한국이 이제 선진국이냐 아니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제 규모로 볼 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경제 규모를 떠받치고 있는 기업들의 지배 구조가 그리 선진적이지는 못하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동학개미가 전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날수록 이런 책들을 통한 일반적인 인식 전환도 함께 수반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주식을 1도 하지 않지만)

전체 250페이지 정도로 부담 없는 두께에 글이 아주 어렵지 않아서 경영이나 경제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법한 책이다.

저자의 집필 스타일인 것 같은데, 인용한 논문이나 저서의 경우 저자의 이름과 논문 제목 등을 본문에도 굉장히 상세하게 적어둔 편이라 읽다가 관심이 간다면 추가로 찾아 읽기에도 편할 것 같아 이 분야에 대한 공부를 심도 있게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시작점이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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