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온 판타지 소설이라니 뭔가 생소하면서도 흥미가 끌려 접하게 되었다.
책을 받아드니 500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두께라 살짝 묵직함이 느껴진다.
표지 역시 판타지물에 등장하는 고서적처럼 디자인되어 있어서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줄거리에 앞서 꽤 재미가 있었다는 점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두께가 좀 있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받은 후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아 다 읽었을 정도로 판타지 소설이 갖는 본연의 기능인 '재미'라는 측면에서 매우 탁월했다.
판타지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이 책만의 특징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작가의 문장이 참 좋다.
단순히 장르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작가의 문장력이 꽤나 좋게 느껴졌다.
번역가의 번역 역시 깔끔해서 책만 읽으면 원작이 외국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소재 자체가 아주 참신한가 하면 그런 건 아니다.
기사와 마녀, 마법, 악령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스토리라는 점에서는 여타의 판타지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재가 갖는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전개 자체가 엄청 흥미진진한데 여기에는 작가의 탁월한 문장력이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부터는 스포일러를 최대한 주의하며 작성했으나 본의 아니게 줄거리가 노출될 수 있으니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무 정보 없이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소설의 배경은 여타 게임이나 판타지 소설의 무대와 비슷하게 왕과 기사, 영주 등의 지배계층이 존재하고 신부를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이 위세를 떨치는 시기이다.
소설의 제목에 등장하는 매장꾼은 '시신의 매장'이라는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기능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최하층민으로 등장한다.
제목 그대로 매장꾼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 파린 역시 이름보다는 '매장꾼의 아들'로 불리기 일쑤였다.
파린은 최하층민의 자녀가 겪는 일반적인 어려움들(가난, 아동노동, 폭력,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등)을 겪으며 불행하게 자랐지만 아버지의 일을 도와가며 나름의 직업의식을 가지고 성실히 살아가던 청년이었다.
작가는 파린이 가난하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