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할 틈 없는 경제학 - 옥스퍼드 경제학자가 빠르게 짚어주는 교양 지식
테이번 페팅거 지음, 조민호 옮김 / 더난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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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면서도 막상 공부하면 괴리감이 느껴지는 학문 분야가 바로 경제학인 것 같다.

대학을 다녔다면 전공자가 아니어도 교양이나 선택과목으로 경제학 관련 수업은 많이들 듣는 편일 텐데, 관련 수업을 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경제학이 아주 재미있는 학문이라고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겨냥해(?) 최근 트렌드에 맞는 다양한 주제들을 통해 경제학 이론들을 짤막하게 정리해 주는 책이 나와 읽어보게 되었다.

주석을 제외하면 300페이지 정도로 일반적인 책 두께지만 한 주제 당 7-8페이지 정도로 짧게 서술되어 있어서 다루는 이슈들은 굉장히 많은 편이다.

대통령 교체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낙수 효과의 영향,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법한 내용들이 두루 등장한다.

책의 앞 부분(3장까지)에서는 저자가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기보다는 기존의 경제 이론들을 곁들여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 주력하는 느낌이다.

이 부분에서는 '경기가 위축되면 정부가 돈을 풀어 경제에 활기를 가져올 수 있다', '의사결정에 매몰비용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결정이 어려워진다' 등 일반적인 경제학 내용이 주를 이룬다.

아래와 같은 문구들은 다른 주제들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수요와 공급이라는 전통적인 경제학의 두 축으로 설명 가능한 것들이다.

노동시장의 수요 감소 폭보다 인구가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면 당연히 나라 밖에서 인력을 충원하게 된다.

시장에서 도태된 기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기적인 해결책 밖에 안된다는 의미이다.

앞으로 30년 또는 40년 동안 이민자들에 대한 인식은 크게 바뀔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갈 것도 없이 인구 고령화와 인구 감소 문제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민자 유치 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젊고 건강한 이주 노동자들을 데려가려고

너도나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 모른다.

(pg 82)

가망 없는 기업과 산업에 대한 구제금융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세수만 낭비할 뿐이다.

명백히 실패한 기업을 지원하기 보다 실직한 노동자들이

더 생산적인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pg 116)

주제가 방대하기 때문에 저자가 무작위로 주제들을 선정한 것 같이 느껴지지만 읽다 보면 저자가 생각보다 고심해서 순서를 정했다는 느낌이 든다.

앞에서는 단순한 사실 전달 위주의 주제들이 등장한다면 뒤쪽으로 가면 점점 더 정치적, 도덕적 판단들이 개입되는 주제들이 등장한다.

가령 경제 성장이 환경 보호에 우선해야 할 가치인지를 묻는 질문은 읽는 자의 국적에 따라 극명하게 답이 갈릴 수 있는 주제이다.

당장 질병과 기근으로 굶는 나라에서는 환경 보호보다는 기반 산업 개발이 우선일 수밖에 없겠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제법 해결된 나라라면 점점 더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가 경제 성장률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책이 중반부로 넘어갈수록 흔히 경제학개론에서 말하는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 시각과는 조금 다른 경제학 이론들을 소개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앞 부분보다 월등히 재미있었는데, 그래도 앞부분을 읽지 않으면 뒷부분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다소 어렵긴 하다.

아래와 같은 구절에서는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모든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존재'라고 가정했던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가 돕는 이뉴는 그것이 사회에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이 개념에 보편타당성을 부여하면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을 더욱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연구는 경제학자들이 비경제학자들보다 더 이기적인 경향이 있음을 밝혀냈다.

(pg 161)

또 아래와 같은 구절에서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더 익숙할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소개하고 있다.

자유무역이 전 세계 시장경제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다음에 인용한 암표 관련 문구에서도 수요와 공급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시장에 일정 수준의 규제가 필요한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오늘날의 유치 산업 보호론은 주로 1차 산업에 기반을 둔,

최근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낮은 경제 성장률에 머문 가난한 나라들과 관련이 있다.

이들이 단기적 비교 우위보다 경제 다각화와 새로운 제조업 개발에

힘쓸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18세기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 국가도 그런 산업을 육성하려면 관세 보호가 필요하다. 자유무역만 강요한다면 성장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pg 224)

음악, 스포츠, 연극, 영화, 뮤지컬, 미술 등

모든 문화 산업에는 이윤 추구 이상의 존재 의미가 있다.

암표는 모든 대중에게 공평하게 제공될 문화 경험을 경쟁하게 만들어

문화 산업의 존재 의미를 퇴색시킨다.

(pg 283)

사회의 발전 정도를 GDP의 증감으로만 가늠하는 현 경제 체제에 대해서도 저자 나름의 소견을 밝히기도 한다.

물론 워낙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사용된 지표여서 당장 대체하기 어려울뿐더러 단일 학자의 연구를 통해 제시될 수준도 아니겠지만 이제는 새로운 경제 지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형성 정도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나 싶다.

삶의 질은 돈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

게다가 인간은 자연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경제학은 생산과 소비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제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반영한 새로운 경제 지표를 마련할 때다.

(pg 233)

물론 경제학을 잘 안다고 해서 우리가 케인즈처럼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저자조차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의사는 우리가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심혈관질환 위험을 경고할 수 있지만,

잘못된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도 예기치 않게 건강할 수 있다.

경제학자도 마찬가지로 그 역할이 일기 예보보다 의료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특정 경제 행태를 보고 경기 침체 가능성을 예상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어느 시점에 경기 침체가 일어날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pg 144)

하지만 정부나 중앙은행의 경제 정책이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를 단순히 뉴스 기사를 통해서만 판단하기엔 우리나라의 언론이 너무나 무능하기 때문에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추면 갖출수록 보다 명확한 상황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는 충분히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경제학을 아주 멀게 느끼지는 않아서 그런지 막히는 부분 없이 평이하게 읽히는 책이었다.

각 주제별로 서술에 필요한 경제학 이론들을 간단히 소개하며 그래프를 통한 설명도 자주 등장하고 있어서 일반적인 비경제학 전공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교양서라는 느낌을 주었다.

주제가 워낙 다양해서 본인이 관심 가는 주제만 발췌해 읽는 것도 가능하겠으나, 앞에서 설명한 개념을 뒤에도 언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처음부터 쭉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특히 학창 시절에 경제학 관련 수업을 한두 개 정도 들은 사람이라면 잊어버렸던 기억을 새롭게 정리하는 좋은 기회가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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