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삶이 불쾌한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박은미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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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라는 이름은 누구에게나 익숙할 테지만 그의 사상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는 학창

시절이 지나면 기억이 나지 않게 마련이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쓴 여러 저서 중 그의 사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책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한 해설서다.

그의 저서 자체를 읽기는 쉽지 않은 도전일 테니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 수 있는 해설서를 택했다.

책을 펴자마자 저자가 이 책을 선택한 독자의 속마음을 꿰뚫어본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 제목을 들으면 무언가 알 수 없을 것만 같고

그래서 더 멋있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제목을 이해하면 내용의 절반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pg 4)

후반부 참고 자료 목록을 제외하면 본문만 약 150페이지 정도로 얇고 작은 책이어서 부담이 없을 것 같았지만 중간쯤 읽다 보니 처음에 본 구절처럼 '제목만이라도 이해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었다.

그나마도 제대로 이해했는지 자신은 없으나 그래도 내가 이해한 바를 정리해두고자 한다.

일단 쇼펜하우어는 이성이 강조되던 당시 철학계에 대한 반박으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고 있다.

인간의 현실은 항상 이성의 설명력을 뛰어넘는다는 것이 쇼펜하우어의 경험이었다.

이성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주류 철학의 흐름과는 달리

그는 세계는 의지로서의 세계이고,

인간은 이 의지로서의 세계를 파악할 수 없다는 생각을 고수했다.

(pg 16)

쇼펜하우어에게 인간은 이성적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맞추어

자신을 바꾸는 존재가 아니다.

거꾸로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 결론이 왜 말이 되는가를 설득하는 데 이성을 사용하는 존재다.

인간은 자신이 의욕하는 바를 행하면서

자신이 그렇게 행해야 했던 이유를 이성적으로 설명하려 드는 존재인 것이다.

(pg 18)

먼저 제목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의지'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된다.

의지란 온 우주를 구성하는 원리인데 그 원리는 우리 인간이 관측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이 설명을 읽고서 자연(自然)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한자로 자연의 뜻이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뜻인데 쇼펜하우어는 우주를 스스로 그러하게 만드는 힘을

바로 의지라고 이름 붙였을 뿐이라고 이해되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란 모든 만물을 지금 그것으로 존재하게 하는 힘으로,

모든 사물의 내적 원리, 생명의 원리, 생명 에너지, 즉 자연 속의 모든 힘을 말한다.

그런데 이 의지는 이유 없이 맹목적으로 움직인다.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삶의 맹목적인 충동인 의지가

무생물, 식물, 동물, 인간으로 현상한 것이 바로 세계다.

(pg 19)

우리는 이러한 의지를 직접적으로 관측할 수 없는 대신 그 의지가 발현되어 표상이 된 것들은 인식할 수 있다.

우리가 관측하는 주변의 모든 것들, 자연물, 동식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의지 그 자체가 아닌 의지가

발현된 '표상'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표현으로 쇼펜하우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은 표상으로밖에 세계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세계를 감지하는 방식이 표상이라는 것이다. - 중략 -

세계는 인식 주관에게 포착된 일종의 상(像)이고

주관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하는 객관이다. - 중략 -

우리는 무엇인가를 만지고 느끼면서 자기 자신을 자각한다. - 중략 -

이런 순간이 바로 스스로를 주관으로 발견하는 순간이다.

(pg 64-65)

이 표상을 관측함에 있어서 우리의 오감은 물론 이성이 작용하게 된다.

당시 철학계에서는 이성에 대한 신뢰로 신체를 열등한 것으로 치부했다면, 쇼펜하우어는 이성 역시

뇌라는 신체 한 기관의 활동에 지나지 않으므로 신체(오감)로 세계를 인식하는 것 역시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쇼펜하우어의 입장은 '주체가 있기 때문에 객체가 있다'는 것이 아니고

'주체가 주어질 때 객체가 있을 수 있고, 객체가 주어질 때 주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체와 객체는 동시적으로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주체는 객체가 있기 때문에 주체일 수 있고,

객체는 주체가 있기 때문에 객체일 수 있으니 이 말은 맞는 말이다.

(pg 67)

말이 어려운 것 같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오감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게 되고 점차 세계를

인식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는 말이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 떨렁 혼자 태어나게 된다면 인식할 세계가 없기 때문에 자아도 형성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계속해서 논리를 연장해 보면, 결국 인간 역시 의지의 일부일 뿐이고 의지는 '나'라는 개체의 생성과

소멸에 상관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므로 결국 인간의 삶과 죽음 역시 태양이 뜨고 지는 것처럼

당연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그의 철학이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라는 용어로 설명되는데, 후반부에 소개된 '의지와 소통으로서의 세계'의 저자는 동양(불교) 철학의 관점으로 보면 쇼펜하우어의 '무'는 마치 '해탈의 경지'처럼

무한과 순환을 뜻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단순한 허무나 염세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 논리를 인간관계나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 또한 무작위적으로 움직이는 의지의 발현일 뿐인지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태어날 수 없다. 이는 타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 인한 고통과 타인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지만, 이것이

단지 제 멋대로인 의지의 발현일 뿐임을 아는 사람은 그 고통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세계의 본질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이러한 의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의지의 객관화가 이 세계를 어떤 식으로든 갈등 속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이 개별자에게 체현된 의지와 저 개별자에게 체현된 의지가 본래 하나이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개별자에게서 체현되면서 충돌하고, 이때 고통이 생긴다.

(pg 107)

그래서 쇼펜하우어를 공부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의지를 긍정하면서도 다른 개체의 의지를 부정하지 않으면 정의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의지 자체에서 벗어나 '의지의 자유' 상태에 이르면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고 했다.

또한 이러한 상태가 바로 불교의 '반야바라밀'의 경지와도 같다고 표현했다.

모든 법을 초월하여 법의 의미가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 자체가 없는 상태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충만한 상태.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경지라고 하니 이렇게 밖에는 정리를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히 이 부분이 여태까지 우리가 쇼펜하우어 하면 떠올렸던 단어인 '허무'나 '염세'와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동양 사상에 보다 익숙한 사람의 시각에서 보기에는 오히려 서양 사상이라기보다는 동양 사상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아래와 같은 구절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노자의 도덕경 중 한 부분이 떠올랐다.

행복은 고통을 그 이면으로 하고 있다.

충분히 목이 마를 때 마시는 물이 맛있고, 충분히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 맛있다.

그러니 행복이 있으려면 필연코 고통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삶의 비밀이다.

(pg 134)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에 빈 공간이 있으므로 그릇의 쓸모가 생겨난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비어 있으므로 방의 쓸모가 생겨난다.

있음의 유용함은 없음에 달려 있다.

(웨인 다이어, '치우치지 않는 삶'의 pg 90)

두 구절이 마치 대구를 이루는 것처럼 닮아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책 자체는 매우 짧고 간결하다.

저자가 쉽게 쓰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 읽으면서 잘 느껴지긴 하지만 철학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엔

마냥 쉬운 책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원작을 보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쉬울 것임에는 틀림없으므로 그의 철학을 맛보고 싶다면,

또 그의 저작 중 어떤 책을 읽어보면 좋을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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