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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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뜻밖에도 어느 날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에서였다.

법의학자라는 생소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예능 프로에 나왔는데 아래와 같은 말을 하길래 무척 인상이 깊게 남았다.

TV를 거의 보지 않아 몰랐는데 '그것이 알고 싶다'에 자주 등장하는 법의학자라 한다.

책을 사려고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 익숙한 이름과 함께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책이 있길래 선뜻 주문했다.

제목에 충실하게 매주 시체를 검시하는 직업을 가진 저자의 법의학 소개와 죽음에 관한 철학을 담은 책이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1부에서는 법의학의 맛보기가 담겨있다.

법의학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저자가 법의학자로서 사건 해결에 기여한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살인 사건들이

소개되어 있다.

법의학자는 확실한 증거로써만 진실을 추구한다.

그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든,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든

서사에 관심을 두기보다 명확한 증거에 입각해서 추론하는 것이다.

경험으로 쌓인 느낌이라든지 감각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결정적 판단은 오롯이 백퍼센트 과학적 증거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법의학이다.

(pg 55)

1부를 읽고 나면 법의학자의 존재가 강력 범죄 해결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된다.

여기서 놀라웠던 점은 우리나라 법의학자의 수가 50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불현듯 이 사람들이 매수라도 당한다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지기도 했다.

의사의 길을 가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선택이라 할 수 없다는데, 얼마나 많은 외압과 유혹이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2부에서는 법의학 관점에서 죽음의 정의와 형태를 다룬다.

죽음의 형태라는 것이 다소 생경할 텐데,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것들을 밝혀내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물에서 건져낸 주검을 의학적이나 과학적으로 검사해

사망 원인이 익사임이 밝혀졌다 하더라도,

스스로 투신했다면 자살일 것이고, 술에 취한 채 수영하다가 익사했다면 사고사이며,

강제로 물을 먹여 죽였다면 타살이다.

(pg 133)

여기서 더 나아가 존엄사, 안락사를 비롯한 연명치료 선택에 대한 히스토리는 물론 현재 일부 국가에서 시행 중인

의사조력자살까지 다루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어떤 제도의 시행 여부를 지지하거나 반대한다는 명확한 의사 표현은 없지만, 우리 스스로

연명치료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 또 그 의견이 존중받아야 하며 그에 따른 죽음의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의료 행위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처분당하는 것이 요즘 우리 사회 죽음의 대세가 아닌가 싶어 씁쓸한 심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대세를 거슬러 이제 우리는 죽음을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쪽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pg 142)

이 책의 백미는 3부부터 시작되는 저자의 죽음에 대한 고찰이다.

하지만 이 3부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1, 2부를 꼼꼼히 읽어둘 필요가 있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우리가 스스로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의 준비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물질적, 심리적 정리가 있을 것이다.

각종 채무관계를 정리하고 유산이 있다면 어떻게 물려줄 것인지를 먼저 정하는 것이 물질적인 정리일 테고,

심리적 정리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인정하고 미리 인사를 나누고, 자신이 원하는 마지막

모습은 어땠으면 좋겠는지를 미리 의사소통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두 가지 정리가 잘 안되기 때문에 죽음을 느닷없이 맞이하게 된다.

나의 스토리를 스스로 종결하지 못하고,

나의 내레이션을 마지막으로 장식하지 못하고 남이 대신 마치게 하는 것이다. - 중략 -

내 인생의 마지막은 반드시 내가 종결지어야 한다.

(pg 238)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과거와 달리 사람들이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가 사망하게 될 확률이 점차 높아진다는 데 있다.

예전처럼 가족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사망하는 것이 아니라 중환자실에서 홀로 온갖 호스들을 몸에 감고 불과 몇

개월 정도나 연장 가능한 연명치료를 전전하다 세상을 뜨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통계로 보면 1989년에는 전체 사망자의 77.4%가 집에서 사망했지만 2012년에는 집이 18.8%로 감소한

반면, 의료기관은 70.1%, 사회복지시설은 11.1%로 높아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서서히 노화가 시작되어 늙어가다가 어느 순간 생의 기미가 푹 꺼지는 지점이

찾아왔고, 주변 사람들은 이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 중략 -

그러나 지금은 마음에 품었던 이야기를 남길 틈도 없이

병원에서 아무런 준비나 의식 없이 마지막 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처럼 급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pg 215)

여기에서 저자가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을 추천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인지라 생각보다 많이 팔린 것 같진 않아서 아쉬웠는데 저자 역시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서평: https://blog.naver.com/qhrgkrtnsgud/220393453216)

여하간 그 책의 논지와 3장에 담긴 저자의 주장이 상당히 유사한 편이다.

둘 다 읽어본 바로는 두 책 모두 상당히 좋은 책이며 읽는 재미도 있어서 추천하고 싶다.

멋있어 보이는 누군가의 마지막을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마무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삶이 있고 100가지의 죽음이 있는 것이다. - 중략 -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다.

(pg 246)

마지막으로 저자가 40분간 강연한 영상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책을 다 읽은 후 쭉 돌려봤는데 이 책 내용의 한 60% 정도는 커버하는 것 같다.

한 40분 정도 되는 영상인데, 보고 난 뒤의 감동 역시 책의 60%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책 역시 2-3시간이면 다 읽으니 어지간하면 책을 먼저 본 뒤 내용 리마인드용으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말도 재미나게 잘 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시간 압박이 있는 영상물이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책으로

읽었을 때의 감동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b_jbtR0En_U

일반 사람들 중에는 분명 영생을 준다 해도 거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각자의 운명을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알 수 없는 영생을 기다리며 환상에 빠져 지내기보다는

우리의 지금 이 순간을 낭비 없이 꽉 채우는 온전한 현재의 삶을 사는 것이다.

(pg 265)

다행히 저자가 매우 쉽게 저술했기 때문에 내용이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

책도 작고 분량도 270여 페이지로 얇은 편이어서 2-3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읽은 시간 대비 충분한 지식과 생각할 주제들을 던져주는 책이라 생각했다.

저자가 충분히 강조한 바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유기체인 이상 삶의 종료 시점이 언젠가는 찾아올 수밖에 없다.

나도 아직 40도 안되었으니 한참 젊을 때라 할 수 있겠으나 가는 데에는 순서가 없다.

삶의 마지막 여정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미리 고민해 보고 가까운 사람들과 진솔하게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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