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퍼맨 - 속삭이는 살인자
알렉스 노스 지음, 김지선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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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흔히 정적인 느낌을 주는 행위로 인식된다.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손에 땀을 쥘 정도'라거나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책을 읽으면서 숨이 막힌다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경험할 수 있게 해 준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나게 읽었기 때문에 최대한 스포일러에 주의하며 소개하려 하겠으나, 의도치 않은

스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하기 바란다.

작품은 제목 그대로 '위스퍼맨'이라는 연쇄 아동 살인범에 관한 이야기다.

범인은 어린 소년만을 골라 살해했는데, 위스퍼맨은 살해 전 피해 아동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던

것에서 착안된 별명이다.

피트라는 베테랑 경찰이 범인을 검거했지만, 마지막 피해자의 유해를 찾지 못해 20년간 습관처럼 피해자의 시신을

찾아 헤맨다.

그러던 중 과거 위스퍼맨의 범행을 흉내 낸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젊은 경찰인 어멘다와 함께 해결하려 한다.

이 마을에 아내를 잃고 홀로 어린 아들 제이크를 키우는 톰이 이사 오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일단 책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재미있다'였다.

500페이지가 넘어 살짝 두꺼운 느낌이 들지만 사건의 전개가 빠른 편이어서 금세 책장이 넘어갔다.

게다가 종반부로 갈수록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긴장감까지 전해져 나중에는 결말이 너무 궁금해 빨리 읽어 버리고

싶은 자아와 한 글자도 허투루 읽을 수 없다는 자아가 충돌하는 개인적으로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서술상의 특징으로는 매우 끔찍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끔찍함의 묘사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피해 아동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해되었는지, 시신은 어떤 모습인지, 범행 현장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등등

일체의 끔찍한 서술 없이 사건의 흐름과 인물들 간의 대화로만 상황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그런데도 읽다 보면 묘하게 무서운데, 고어함 없이도 무서운 분위기를 잘 표현했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읽으면서 가장 끔찍한 구절을 고르라면 아래의 문단을 고를 것 같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아래의 문구가 왜 끔찍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는지는 작품을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안전하게 지켜줘야 할 아이. 사랑해줘야 할 아이.

왜냐하면 그게 모든 아이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거니까.

안 그런가? 부모에게 사랑받고 소중히 여겨지는 것.

그 생각에 심장이 아파왔다.

(pg 419)

특히 사건 자체가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여서 그런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보자니 더 무서웠던 것 같다.

자신이 상해를 입을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내 아이가 상해를 입을 것에 대한 두려움은 차원이 다른 것 같이 느껴진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 뉴스를 볼 때에도 우린 무서움을 느끼긴 하지만 만약 그 범죄가 어린

아이만을 대상으로 벌어졌다고 하면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아주 매력적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다양한 남성상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는 점이 좋았다.

젊은 시절 알코올 중독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과거를 반성하며 금욕적인 삶을 이어가는 경찰,

급작스럽게 싱글대디가 되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지만 그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하는 젊은 아버지,

자기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자 하는 사이코패스 악당과 그를 추종하는 추종자까지

정말 영화화하면 좋을 캐릭터들이 전체적인 작품을 이끌어간다.

이미 해외에서는 이런 점이 충분히 알려졌는지 어벤져스 인피니티워로 유명한 루소 형제가 이 작품을 영화화할

계획이라 한다.

아직 캐스팅 정보 등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없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피트 역할에는 키스 데이비드라는 배우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논리적인 이유는 전혀 없고, 그냥 알코올 중독을 운동으로 이겨내며 범인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늙은 배테랑

경찰 역할에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만 이번 작품의 경우 어멘다를 제외한 주요 인물들이 모두 남성이어서 최근 헐리웃의 PC 성향에 맞는 작품이

되긴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우려가 든다. (그래서 흑인 배우가 많이 나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책 후반부에서 역자도 언급했듯이 이런 종류의 소설에서는 보기 드물게 문장들이 매우 좋은 편인데,

영화로 만들면 이런 문장들을 느끼기가 어려우니 단순한 서사 위주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나비들에겐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게 살아 있는 존재들이 하는 일이다.

아무리 고되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도 그들은 계속 삶을 이어간다.

(pg 114)

여하간 개인적으로는 무척 재미나게 읽은 작품이니만큼 모쪼록 영화로도 잘 나와서 다시금 본 작품의 감동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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