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몬 작가의 사람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브랜든이 드디어 책으로 발매되었다.
온라인에서야 진작에 완결이 났지만 뭔가 만화는 손으로 넘기는 맛이라고 생각하는 아재인지라 책으로 나와
내 손에 들어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데이빗'에서는 인간의 형상이 인간을 정의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면,
'에리타'에서는 자신이 정의하는 자신의 정체성이 인간을 정의함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고민하게
해 주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인간에 관한 어떤 질문을 던져줄지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에리타처럼 스토리에 스포일러가 될만한 반전이 있는 편은 아니어서 조금은 자유로운 내용 소개가 가능할 것 같다.
브랜든에서는 각자가 모두 자신을 '사람'이라 여기는 3개의 종족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브랜든은 우리와 같은 인류로 흑인 남성이며 영어를 쓰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브랜든이 어느 날 다른 세계로 가는 포털을 발견하게 되어 빨려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 '올미어'라는 존재를
난다.
올미어는 검은색 구형으로 된 머리에 가느다란 금속막대로 이루어진 몸체를 지녀 마치 거실에 두는 스탠드형
조명기구(;;)같이 생겼다.
올미어의 세상은 압도적인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인격이 모두 데이터화되어 노후된 몸을 계속 바꾸면서 인격이
계승되고, 각 개체 간의 의사소통도 마치 블루투스로 데이터를 전송하듯 이루어진다.
SF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각기동대의 세계관에 스타크래프트의 칼라이 프로토스가 더해진 느낌이라고
상상하면 얼추 맞을 것 같다.
올미어의 세계에서는 모든 지식과 경험이 모든 개체에게 공유되기 때문에 각 개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하면 되는데 올미어의 경우 그 일이 다른 종족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브랜든을 만나기 전 그는 '라키모아'라는 원시 종족을 관찰하고 있었다.
라키모아는 긴 털 고릴라 같은 생김새를 가진 종족으로 수렵, 채집 시절의 인류와 비슷한 느낌이다.
압도적으로 발전된 사회에서 사는 올미어는 브랜든이나 라키모아를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벌레 정도의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브랜든은 자신이 올미어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3개 종족이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각기 다른데 이 부분이 재미있다.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서로를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스포가 될 수 있어 흐리게 처리하였다.)
올미어의 시각: 올미어(사람) 브랜든(벌레) 라키모아(벌레)
브랜든의 시각: 올미어(사람) 브랜든(사람) 라키모아(사람)
라키모아 종족의 시각: 올미어(신) 브랜든(천사) 라키모아(사람)
결말까지 스포를 할 수는 없으니 작품의 흐름만 언급하면,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뭔가 대단한 논리적
증명 방법이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굉장히 감성적인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방법이 만화라는 장르에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섣부른 논리적 증명 방식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다 읽은 뒤 종합해 보자면 그저 생각하고 느낄 수 있으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고, 과거를 통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2권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만화이기 때문에 분량이 그리 길지 않은데, 3개의 전혀 다른 사회를 독자들에게
이해시켜야 하니 각 세계에 대한 묘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주요 서사의 진행은 굉장히 빠르게 지나가버린 것 같은 아쉬움도 든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작가가 할 말만 딱 하는 느낌이어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는 느낌은 3부작 전체에 걸쳐
일관적으로 좋았다.
보통 만화의 경우 인기가 좋으면 무리하게 분량을 늘리려는 시도가 많은 것 같던데 이 작가는 그런 거 없이 자신이
구상한 스토리에 꼭 필요한 장면과 대사만 딱 넣어 마무리 짓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것 같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평소에 잘 해보지 못했던 질문을 던져주는 좋은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1부와 2부는 재미있게 읽고 나면 끝에 가서 뭔가 찜찜하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이 남는 엔딩이었다면
이번 브랜든은 그야말로 '완결'에 걸맞은 결말을 가지고 있어서 독자 입장에서도 책을 덮으며 한껏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브랜든이라는 캐릭터 역시 충동적인 면과 나약하지만 선한 면을 함께 지닌 평범한 사람으로 등장하는데 이 인물이
책 두 권에 걸쳐 내면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