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악에게 묻는다 - 누구나 조금씩은 비정상
김성규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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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차를 보기 전까지는 나도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그저 동전의 양면이나 흑과 백처럼 대립되는 두 가지

양상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자가 고심 끝에 선정한 목차를 보니 악에도 나름 카테고리가 있고 그에 따라 죗값의 경중도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분류된(?) 인간의 악행을 짚어보며 보다 더 선하게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읽게 되었다.

일단 저자와 책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면, 죽음심리학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연구 주제를 가진 교수가 대학에서 같은

주제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쌓인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 한다.

살짝 중2병 느낌이 나는 제목인지라 읽기 전에 책의 난이도가 조금 걱정되었는데 다 읽은 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쉽게 읽힌다'라는 것이었다.

300페이지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에 시각 자료들도 많고(무려 올컬러!), 문체도 친절한 선생님에게 듣는

수업처럼 편안하게 쓰여 있어서 잠깐씩 짬내서 읽기에도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 13가지의 주제로 인간의 악행을 들여다볼 수 있다.

최근 대선 정국과 맞물려 다시 이슈가 되고 있는 갑질과 차별에서부터 사기, 관음증, 학대 등의 범죄 행위와

사이코패스, 정신분열, 다중인격 등 정신장애와 연관된 악까지 다양한 주제로 선과 악의 개념을 설파한다.

주제는 다양하지만 논지를 전개하는 방식은 매우 일관적이어서 초중반쯤 지나면 책의 흐름이 익숙해진다.

먼저 들어가는 글을 통해 저자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생각해 볼 주제를 던져준다.

곧이어 주제와 관련된 실험과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인간이 이런 악의 길로 빠지게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런 다음 이러한 악행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지 예시를 들어준다.

이 때 예시로 역사나 사회적인 이슈는 물론이고 관련된 유명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 흥미로운 사례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서 주제를 너무 어렵지 않게 고민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선을 추구할 힘이 있다는 것을 설파하며 한 챕터가 끝나게 된다.

(저자가 이렇게까지 일관적으로 모든 장을 서술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를 마지막 13장을 읽으면서 유추할 수

있었다. 13장의 주제는 '강박'이다.)

주제가 다양하니 어느 하나를 골라 소개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인상 깊었던 구절과 함께 간단한 소감을

남기고자 한다.

아래의 문단은 설령 사이코패스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모든 사이코패스들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례를 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원활한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사이코패스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롭게 느껴졌다.

사이코패스는 사람의 감정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합니다.

누군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면, 그 슬픔에 대한 인과관계를 분석하고

그에 따라 취해야 할 자신의 행동 양식은 무엇인지 따져보는 식입니다.

태생적으로 타인에게 공감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는 타인에게 동정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길을 택하기 마련입니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 말이죠.

(pg 73)

사이코패스를 냉철함을 겸비한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내는 것도 문제지만, 사회에 융화되어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사이코패스도 분명 존재할 것이므로 무턱대고 강력범죄자로 그려내는 것 또한 지양해야 할 것이다.

11장의 주제는 '기억'이다.

현재 기억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고 곧 현실 가능해질 수 있다고 한다.

잊고 싶은 기억은 삭제하고 갖고 싶은 기억을 주입할 수도 있을 것이라 한다.

저자는 이런 기술이 자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의 뇌는 마침내 기억이라는 과업에서 벗어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기억을 이처럼 자유자재로 다룰 뿐 아니라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게 되면

과연 행복할까요? -중략-

행복했던 것과 좋았던 것만 취사선택하여 기억을 남기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온다면

그때의 우리는 '진정한 우리'일 수 있을까요?

(pg 265)

'테세우스의 배' 비유를 여기서도 꺼낼 수 있을 것 같다.

기억 역시 '나'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 본다면, 자신의 일부를 조금씩 기술로 변화시켜 간다고 할 때 과연 우리는

어느 수준까지 확실하게 '그래도 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지금 함께 고민해야 할 질문임에는 틀림없다.

책 초반에 저자는 인간을 성악설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인간은 악하게 태어난다. 생존하기 위해 다른 존재를 죽이고 섭취한다.

즉, 다른 존재보다 우월할 때 생존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 인간이고,

그것은 분명 악이다.

남들보다 큰 이득이 없어도 기본적으로 남들보다 우위에 있으려고 하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악하다.

(pg 37)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저자가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선량함을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소개되는 악행에는 반드시 반례가 존재하고 언제나 조금 더 선한 쪽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가 발전할수록 잔인한 형벌이 점차 사라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인류는 보다 더 선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책은 읽는 사람들에게 그런 믿음을 갖게 해주는 책이라 할 수 있었다.

우리 인간이 고도의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른 존재에 대한 높은 수준의 공감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존재와 함께 감정을 나누고 그 존재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pg 56)

그러니 우리 이것 하나만 기억하기로 합시다.

우리는 다행히도 불완전하게 태어났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를 가진,

그야말로 너무도 인간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pg 312)

솔직히 기대한 것보다는 책 내용이 좀 쉬운 편이어서 다소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접근성이 좋다는 뜻이니 저자가 강의 대상으로 삼는 대학생보다 더 어린 중고등학생들도 충분히 일독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악하다는 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언제나 악과 마주하며 살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고,

좀 더 선에 가까운 길을 가고자 끊임없이 모색해야 합니다.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우리를 더욱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고 말이죠.

(pg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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