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기의 힘 - 언어와 독서 교육을 중심으로
최승한 지음 / 바른북스 / 2022년 1월
평점 :
절판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 관련 책을 종종 읽었었는데 생각보다 도움이 되었다고 느낀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이마다 워낙 성향이 다르고 부모의 상황들도 다르기 때문에 좋은 글귀를 읽어도 적용하는데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여태까지 본 그 어떤 육아 관련 책보다 훨씬 더 실용적인 지침을 담고 있었다.

일단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모든 육아책이 다 그렇겠지만 '불안감' 때문이다.

나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키우는게 맞나?'라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조금 특이하게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살다 보니 별 희한한 부모들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아직 우리말도 잘 못하는 아이를 원어민을 붙여 영어 과외를 시킨다거나 어린이집 하원 후 학습지 할

시간이라며 놀이터 가자는 애를 질질 끌고 들어가는 장면들을 보면 이해가 안가다가도 문득

'우리 애만 너무 놀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차에 그나마 내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책 육아 관련 책이 나와서 이왕 책 읽어주는 거

좀 잘 읽어주고 싶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목표 독자가 확실하다.

저자가 책 서두에서 분명히 밝히기를 '아이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진 부모라면

읽기를 권한다.

공부(특히 수능 중심 교육 체계에서의 공부)라는 것은 반드시 활자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어능력'이 '학습능력'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말한다.

만약 아이가 수준 높은 언어능력을 갖추었다면

수학, 사회, 과학 공부를 뒤늦게 시작해도 성적을 쉽게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남들은 1년 넘게 공부를 해도 높은 성적이 안 나오는데 '언어능력을 갖춘 아이'는

지금 꼴찌를 하고 있더라도 석 달만 죽을 만큼 공부하면 모든 과목에서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pg 355)

고3 수험생을 가진 부모가 본다면 눈이 번쩍 뜨일만한 문구겠지만 안타깝게도 저자가 말하는 언어능력을 갖추는

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또 아이가 읽는 책의 수준이 빠르게 높아질수록 언어능력의 발달도

심화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부모가 책을 얼마나 즐겁게

자주 읽어주느냐가 이후의 아이 독서 습관을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개는 훌륭하다'에서 대부분의 솔루션이 개가 아닌 개 주인에게 집중되듯 이 책 역시 아이가 책을 잘

읽으려면 당연하게도 부모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단지 많이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저자는 아래의 4가지 요건이 필수적이라 말한다.

1. TV와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부모

2. 다양한 수준의 책이 많은 집안 환경

3. 수준 높은 책을 읽는 부모

4. 꾸준하고 일관적으로 책을 읽어주는 부모

얼핏 봐도 1번부터 4번까지를 다 지키는 것은 어지간한 부모가 아니면 힘들 것이다.

우리 집의 경우 TV는 거의 안 보는 편이지만 스마트폰은 자주 보는 편인 것 같다.

내가 책을 즐겨 읽기는 하나, 아이가 내가 책 읽는 모습을 그리 인상적으로 봐주는 것 같진 않다.

(물론 내 탓도 크다. 책 좀 방해받지 않고 읽고 싶어서 아이한테 TV 틀어주고 독서를 하곤 했으니 말이다.)

특히 2번의 경우에는 나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어서 조금 고민이다.

나름 다양한 수준의 책을 읽는 편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터라 다 읽은 책은

중고로 팔거나 버리거나 나눠줘 버린다. 그래서 내가 독서 블로그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우리 집에 오면 생각보다 책이 없어서 놀라고는 한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규모를 유지할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잘 될 것 같진 않다.)

다만 4번의 경우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해오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못해도 자기 전 20-30분은 무조건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 외에도 자잘하게 아이와 책 읽는 시간을 합치면 못해도 하루 한 시간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의도적으로 같이 책 읽는 시간을 크게 늘렸는데 그래도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고 잘

따라와 주는 걸 보면서 역시 부모가 읽어주는 것이 최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기까지 했다면 이제부터 할 일은 아이가 접하는 책의 수준을 높여주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무조건 그림동화만 읽어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줄글(그림 없이 순수하게 글로만 되어 있는 책)을 빨리 읽는 것이 언어능력 신장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긴 설명을 요약하자면, 언어능력이라는 것이 곧 활자를 읽은 후 내용을 파악하고 판단이 이루어지는

일련의 사고작용이 얼마나 빨리, 잘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글의

구조를 읽고 파악하는 능력을 어릴 때부터 충분히 길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부모가 태어나면서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주는 아이의 경우 빠르면 24개월이면 글만 있는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부모들은 초조해지는 법이지만)

이 부분은 어떤 이론적인 배경이 있다기보다는 저자도 수회에 걸친 강의를 통한 귀납적 사례임을

인정하지만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400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살짝 두꺼운 책이지만 실제 강의하는 것처럼 편안한 문체로 쓰여 있어서

읽기에 부담스러운 책은 전혀 아니다.

그러면서도 현재 아이와 함께하는 책 읽기 전반을 돌이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준 책이었다.

특히 책을 읽으며 아이와 함께 하는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아이와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아이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세상을 떴다'라는 표현을 '외국에 갔다'라는 뜻으로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죽다'와 '돌아가시다'라는 단어와 연결시켜줬는데 아이가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는 건 장기전이다.

책 한 권 읽고 바싹 정신 차려서 며칠 해봐야 그 사이에 아이가 바뀔 리 없다.

책 내용은 심플하다면 심플하지만 그 심플함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결코 심플하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딸이 공부를 잘 하게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내가 공부 잘하는 딸을 원하는 건지 그렇지 않은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왕 잘하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또 너무 모범생으로 살진 않았으면 싶기도 한게 부모 마음이다.

그치만 적어도 본인이 죽어라 노력하는데 머리가 나빠서 안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진 아이가 되지만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부모가 어떻게 아이에게 최소요건을 갖추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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