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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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인 현재의 시점에서 '프레임'이라는 단어는 그리 색다른 개념은 아니다.

누구나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프레임이 있으며 이 프레임에 따라 같은 사실일지라도 받아 들이는 태도는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위의 의미로 쓰고 있는 '프레임'과 이 프레임을 만드는 일, 즉 '프레이밍'에 관한 책으로

이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책이라 한다.

이 책이 2004년 미국에서 처음 발간된 책인데,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용법에 맞게 쓰고 있으므로 이 책이 가져다 준 효과는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 본다.

읽기 전에 이 책의 저자가 진보진영의 시각에서 집필했다는 점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재미있는 점은 저자가 생각한 주요 독자 역시 진보진영일 것이라 상정하고 쓰여졌다는 점이다.

프레임에 관한 전문가이다보니 어차피 프레임이 다른 사람은 반대 진영의 책을 읽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저자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애초에 이 프레임에 동의하는 자들이 이 책을 읽고 보수진영과의 정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들을

구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 같다.

내 서평 역시 저자와 비슷한 프레임을 가진 사람이 읽은 감상임을 감안하고 보면 좋겠다.

일단 제목이 특이한데, 우리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코끼리를 떠올린다.

떠올리지 말라는 메시지보다 코끼리라는 이미지가 더 크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레임은 뇌 작동 방식과 연관된 개념이다.

어떤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그 정보가 우리의 프레임에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따라 그 정보의 처리 방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프레임에 맞는 정보라면 오래 기억되며 그 정보가 의견이라면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저장되지만

프레임에 맞지 않는 정보라면 쉽게 휘발되며 그 정보가 의견이라면 반대 입장을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적 담론의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하면,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게 된다.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바꾸게 된다.

언어가 프레임을 활성화하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은 새로운 언어를 필요로 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

(pg 12)

저자는 이런 프레임이 정치에서 활용될 경우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보았다.

하나는 '권위있는 아버지 모델'이고 그 대척점에 '자애로운 부모 모델'이 있다.

책의 상당 부분에 걸쳐 각각의 모델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여러 예시들이 등장하지만 쉽게 정리하면,

보수는 '아버지 모델', 진보는 '부모 모델'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자가 '부모 모델'은 옳고 '아버지 모델'은 틀린 것이라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 다 자신은 '도덕적'이라 생각하는데 그 도덕을 구성하는 체계, 즉 프레임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양당제인 미국에 최적화된 모델이라 생각되지만 사실 우리나라도 크게 보면 이 두 모델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보수세력에서 일찍이 프레이밍의 힘을 인지했으며 공격적인 투자로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아래의 사례가 보수세력이 프레이밍을 활용해 효과를 거둔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코미디언 지미 킴멜은 자기 쇼의 제작진 중 한 명에게 마이크를 들려

로스엔젤레스 길거리로 내보낸 다음 행인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하게 했다.

'오바마케어'와 '저렴한 건강보험법'중에 어느 쪽을 더 선호하십니까?

압도적 다수가 자기는 오바마케어는 싫지만

저렴한 건강보험법은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들 대부분은 이 두 개가 같은 법안임을 알지 못했다.

(pg 120)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개념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프레임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최근 '나라 빚 역대 최대'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뉴스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GDP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주변 국가들과 비교할 때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국가 부채 상승 추세'과 '나라 빚 역대 최대'는 얼핏 비슷한 뜻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책의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아래 기사의 제목과 실제 내용의 괴리를 느껴본다면 언론에서 '나라 빚'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어떤 프레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지를 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기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32786#home)

300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길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진도가 쭉쭉 나가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았다.

우리는 뇌로 생각한다. 여기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몇몇 정치인들은 신체의 다른 부분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도 뇌로 생각한다.

(pg 9)

사실상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개인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있다.

-중략-

하지만 부유층의 부가 급속히 축적되고 나머지 사람들의 부가 급속히 사라지는 것은,

곧 대다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가치 있는 경험을,

즉 의미 있는 삶을 급속히 상실하고 있다는 뜻이다.

(pg 155)

특히 저자가 기자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담긴 아래의 구절은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봄직 하다.

우리나라의 주류 언론 기자들은 정확히 이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이 땅의 기자들에게 '기래기'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이 나온지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기대보다는 그렇게까지 참신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등장하는 사례 역시 너무 과거의 미국 사례들 위주여서 국내 독자 입장에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물론 이 책이 이후에 나온 수많은 사회과학 책들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을테고 내가 그런 책들을 많이 본 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누가 프레임을 만들고 그 프레임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를 예리하게 주시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해주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지금은 보수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정치판이라면 이런 프레임들을 경쟁적으로 만들어 활용한다.

따라서 저자의 정치관은 확실하지만 정 반대의 정치관을 가진 사람 역시 읽고 나면 반대 진영의 프레이밍을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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